본문 바로가기

산행기

지리산 종주기: 성삼재 - > 세석대피소 (2021-5-1)

내가 처음 지리산 무박종주에 나섰던 게

2013년 7월 16일이었으니

지금으로 부터 거의 8년전의 일이다.

 

그 당시는 야생화들도 많이 피어 있었고,

날씨도 맑아

지리산을 걷기에

딱 좋은 날씨였던 것 같다.

 

그러나 오늘은 

이곳의 날씨가 여간 심술스러운 게 아니다.

 

소태풍급의 바람에

안개비에

그리고 또 때로는

얼굴을 할퀴며 달겨드는 우박에 ....

 

여간 심술스럽고 요사스러운 게 아니다.

 

어떻든 우린

새벽 3시 30분 쯤 성삼재에 도착하여

산악회에서 준비해 간 요리로

간단히 아침식사에 가름한다.

 

성삼재에서 중산리 까지는

대략 35Km로

설악 공룡능선이나 화채능선 보다

더 길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성삼재(2021-5-1: 04시)

어둠속 폭풍우를 뚫고 한참을 걷다 보니

노고단이런가

 

저 멀리에

무법자들의 가랑이 사이로

불빛이 새어 나온다.

 

노고단에서 : 내 헤드랜턴 불빛이 반사되어 마치 해나 달 처럼 반영된다.

나는 우리 일행중 

제일 뒤에 처져서

어둠속 빗속의 행군을 계속하여

성삼재 - 노고단 2.5Km를

1시간 넘게 걸려 도착한다.

 

노고단 출입문

내가 노고단을 처음 오른 건

고2때인 1965년 여름이다.

 

어느 방랑벽이 심한 

같은 반 친구녀석이

 

내 고향이어서

그 때 까지도 내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노고단 아래 화엄사가 있는 마을을 거쳐

노고단을 오르자고 제의를 해왔었기에 

나도 쾌히 승낙하고

그 친구와 함께 노고단을 올랐었다.

 

그런데 그 당시만 해도

해방 직후 세워졌던

미군들의 휴양시설들이 

6.25와 파르티잔들과의 내전을 거치면서

파괴된 채로 흉물스럽게

우리를 맞았었다.

 

돼지령을 향하여

어둠이 어느 정도 물러가자

궂은 비에 질척거리는 산길이

스멀 스멀 눈을 비비고 일어나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다.

 

불미스런 사단이 일어난 것은

바로 이 때였다.

 

"뚝! - "하는 소리와 함께

발목을 붙안고 나는 옆으로 쓰러졌다.

 

발목이 부러졌는지

인대가 나갔는지 ----

 

이후로 

나의 이번 지리산 종주도

전도가 순탄치 만은 않으는 예감이 든다.

 

바로 내 옆을 지나던 

낯선 산객 마저

나의 이런 불상사에 놀랐던지

병원에서 산행에 대비하여 조제해 왔다는 

정제약 두알을 건내 주었다.

 

고마운 사람!~~

이렇게 세상 곳곳에는

빛나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아직도 살만한 공간이다 ....

 

임걸령 가는 길

 

예전 3번 정도 다녀 갔던 피아골 ...

그 모든 추억들은

주마등 처럼 뇌리속을 달려 나가고.... 

 

임걸령 약수터가 바로 옆이었건만

몇 발자국 걸어 

잠간 일견하고 

다시 산행길에 나선다.

 

성삼재에서 부터

이제 겨우 6Km 왔으니

1/6쯤 온 셈이다.

 

날씨는 우중중하고

꽃들은 아직도

자태를 뽑낼 생각 조차 못하고 있으니

 

오랫만에 종주길에 나선 산나그네,

그의 마음도 역시 꼬질 꼬질하긴 마찬가지 ---

 

노루목 가는길

"오늘은 멀리 보지 마세요;

 

그냥 가까이 있는

저희들만 바라봐 주세요!"

 

안개 속에서 속삭여 주는

나뭇가지 터널을 이룬 

세월의 예술혼들!~~~~

 

노루목 (반야봉과 삼도봉 갈림길)

낙조로 유명한 반야봉을

오랫만에 만나보고도 싶었지만

이런 몸 상태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그냥 삼도봉으로 향한다.

 

삼도봉 가는 길

아직도 여유로운 일상의 진달래 .

 

그러나 그의 미소엔

어딘지 불안한 그림자가 일렁이고 ......

 

삼도봉

 

삼도봉의 바위들 

 

기상이 범상치가 않네요.

 

먼곳을 응시하는 

용장들의 집합소 .......

 

화개재 내려가는 길

화선지 대신

허공이라는 공간에

세월의 예술혼으로 새겨 놓은 나뭇가지 작품....

 

안개들의 특별한 작품이

수려하고 깊기도 깊다.

 

화개재 -- 이곳에서 왼편으론 뱀사골 - 오른편으론 쌍계사와 화개장터

청년시절 .....

전주에 살던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계곡 .....

그 이름 뱀사골(배암사골의 준말)

 

청년시절엔 

년말이면 가끔 찾아 와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북한군 연대장 출신인 황의지씨, 

그리고 이 근처에 흩어져 살고 있던

파르티잔들과 함께

한잔 술을 나누며

밤이 이슥토록 얘기꽃을 피우며 

정담을 나누곤 했던 곳,.

 

그 시절이 그립다.

 

현호색 군락지

평야지 들판에선 벌써 시들었을 현호색

그러나 이곳 1500미터를 오르내리는 지리산에선

이제야 현호색이 예쁜 미소를 보내준다.

 

노랑제비꽃

어둠속에서 황금의 미소로

신비의 존재감을 심어주던 노랑제비꽃들도

아직은 여유로운 모습이지만

어딘지 수심이 어려 있슴은

위협적인 현상황에서는

꽃들에게 주어진 어쩔 수 없는

존재의 한계인가 보다.

 

 

멸종위기의 기생꽃

설악산 서북능선에서 몇 번 보았던 그대를

이곳 지리산에서는 처음 보게되니

너무 기쁘네 ...

 

그런데 이걸 어쩌누 ....

날이 너무 추워 

그대의 언 몸을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만 아파하며

떠나 가야 하는 

슬픈 나그네!~~~~~~

 

얼레지 군락지

 

연하천대피소

연하천대피소에 내려서니

갑자기 우박이 쏟아지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

행동식으로 아침식사를 하다 말고

배낭에서 얇은 바람막이 점퍼를 꺼내 입습니다.

 

8년전 처음 지리산 종주 때에

이곳에서 그 간밤에 서울에서 가져온 김밥을 먹었다가

즉시 복통을 일으켜 

그 이후로 서울에 올라 올 때 까지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죽을 고생만하고 ...........  

 

장터목에서 계곡을 이용하여

중산리로 내려 갔던 악몽이 

또 다시 되살아 나기 시작합니다.

 

우박을 맞고 있는 노랑제비꽃

황금 보석들 보다 더 귀하게 느껴지는

지리산의 노랑제비꽃들이

상처 입은 발목을 이끌고

고군분투하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황금의 미소를 보내주며 응원을 합니다.

 

벽소령대피소

정말 오랫만에 

벽소령대피소에 들려볼 만도 하련만

 

지칠데로 지친 부상병의 마음은

감상적인 여유의 싹이 움트는 것을

털끝 만큼도 허용치 않았으니 ......

 

바위말발도리

내 사는 남한산성에서는 

이미 그 자취가 사라질 즈음의 바위말발도리 .....

 

이곳에서는 아직도

생기발랄하게 날 반길 준비가 되어 있었네요.

 

하지만 

아, 바람이여 ...

눈발이여...

몸을 얼어 붙게하는 추위여!~~~

 

삔 발목으로 가기엔 넘 먼길이다.

세석대피소 까지 5.2Km ....

내 컨디션으로서는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거리다.

 

지금의 내 몸 상태로

중산리 까지 간다는 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어림없는 망상이다.

 

 

선비샘

 

2013년 7월 그 당시에는

이 선비샘엔 특별한 표시가 없었다.

 

다만 옴팡한 세멘트 웅덩이와 

의신마을에서 부터

솔파도 타고 올라 오는 세상의 얘깃거리들!~~

 

다만 그것 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화려한 표지판에,

그럴듯한 나무 데크에 ..

그동안의 변신이 정말 예상 밖이다.

 

5월의 눈과 우박 속에 얼어 붙은 진달래

아무리 목소리 높혀 외쳐 보아도

돌아 오는 건 딱 하나의 목소리,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건 

바로 그대들의 몫이다.

 

이 모든 어려움을 불러들인

바로 그대들의 몫이다. "

 

5월의 상고대와 진달래

상고대에 박제된 진달래...

코로나19 시대의 군상들 

 

생존을 위한  전쟁은

결국 기온과, 환경과, 바이러스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을 ........

 

그러나 거기에 첨가되는 것은

결코 제어할 수 없는 

인간들의 욕망이니!~~~~~

 

5월의 상고대

 

지리산, 5월의 상고대와 진달래 (2021-05-01)

 

영신봉을 지나며 (2021-05-01)

이제 세석대피소가 멀지 않았으리 ....

 

현호색

 

이쯤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 세석대피소에 연락을 한다.

 

하룻밤을 의탁해 볼 요량이었으나

요즘 코로나19로 인해서

대피소에서의 투숙은 절대 불가라고 한다.

 

그럼 나는 어찌 하란 말인가?

 

그후로 나는 산악회 총무와

버스의 내 옆지기에게도

지금의 내 형편을 알려 준다.

 

회원들은 지금

천왕봉에서 내려가는 중이란다.

얼음으로 코팅된 바위길을 따라

중산리로 내려가는 중이란다.

 

이 불순한 날씨에 

얼마나 고생들이 많을까.

 

세석대피소에 다가갈 수록

태풍은 온 숲을 흔들어대며

요동을 친다.

아니 호통을 친다.

 

온 세상 사람들을 질타하는 

지구의 호통을 혼자 도맡아 

가슴에 갈무리하며,

 

나는 무겁고, 아픈 다리를 절룩거리며

그래도 세석대피소에 다 왔다는 안도감에

희망의 불씨를 살려낸다.

 

처녀치마

정말 오랫만에 보는 처녀치마!~~~

 

방갑기는 하지만

망연자실한 그 모습에

내 가슴은 아리고 시리기만 하다.

 

세석대피소 (2021-05-01 저녁)

내 전화를 받은 대피소 직원은

일단 안으로 들어와

담당 안내원과 상담을 해 보란다.

 

내 사정을 전해들은 직원은

발열체크를 하고

방문 노트에 기재를 하고 

자리를 하나 마련해 준다.

 

250명의 등산객이 묵을 수 있는 대피소 숙소에

달랑 나 혼자 입실을 하게 되었다.

 

지금 쯤

얼음코팅된 바윗길로 

천왕봉에서 중산리뢰 내려가는 횐님들은

얼마나 고생이 심할까?

 

세석대피소의 저녁(2021-05-01)

여전히 차거운 바람은 미친 듯 몰아치고

싸락눈이 내리고 

날도 어두워지는데,

화장실은 실은 100미터 쯤 걸어 나가야 한다.

 

태어났다가 이제 황혼의 나이인데,

이 처럼 험악한 날씨는 

거의 처음 대하는 것 같다.

 

세석대피소의 저녘 무렵(2021-05-01)

그 광풍소리만 들어도 주눅이 들어

감히 밖에 나갈 엄두도 나지 않는

세석대피소의 저녁,...

 

하지만 실내에서는 

화장실이고 취사실 조차도

사용을 못하게 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야외 화장실에서

겨우 할 일을 끝내고 나니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세석대피소 숙박실에서 (2021-05-01)

대피소에서 구입할 수 있는 물품은

생수와 햇반 뿐 ....

 

열을 가하는 라면이나 커피 조차 

팔지 않았다.

 

그러나 햇반을 하나 주문하자

자기가 먹던 반찬인 듯

무울 생채도 한 접시 주어

서울에서 가져간 껌 처럼 생긴 쑥떡과 함께

저녁 만찬을 조촐하지만 그럴듯 하게 즐겼다.

 

잠들기 전에

대피소 관리인하고 안내인이 

모포 2장과 얼음팩을 가져와서

인대가 나간 오른쪽 발목에 

얼음 찜질을 해 줬다.

 

그러면서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백무동이나 천왕봉으로는 절대 가지 말고

거림으로 내려 가란다.

 

거림쪽이 제일 완만하고 짧은 코스이니까

그렇게 알려주는 것이리라 ....... 

 

아뭏튼 밖은 추위가 기승을 부리겠지만

실내에는 전기 시스템으로 난방을 해주어

아주 편하고 근사한 취침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비록 발목을 삐긴했어도

자기가 쓰려고 가져온 조제약을 

선뜻 내어준 산객을 만나 고마웠고,

훌륭한 디피소에서 

고마운 안내인들을 만나 

호강한 일정이었네요.......... 

 

큰님께서 예비해 주신

한 셋트의 지리산 종주 산행 ..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