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1750m)가 높아지고 눈보라가 치니
,아침 샛때가 지났는데도
기온이 오르지도 않고
추위가 더욱 심해진다.
취사장을 서둘러 찾아
남은 떡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강풍에 대비하여
준비해 간 비옷을
방한복 대신 겉에 걸친다.
천왕봉과 해후할 준비는
대강 끝냈다.
이날이 마침 일요일 이었기에
많은 인파로 넘쳐났다.
옛날 이곳이
지리산의 남쪽과 북쪽 사람들이 서로 만나
물물교환을 했다던 말 그대로
5일장 처럼 붐볐다.
새벽 같이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넘어와
백무동이나 거림으로 내려갈 산객들 ....
반대로 새벽에 백무동이나 거림에서 올라와
천왕봉을 올랐다가
중산리로 내려 갈 사람들!~~~
추위 속에 떨면서 식사를 했지만
그래도 아쉬워서
다시 한번 돌아 보며
작별 인사를 하는 내 마음!~~~
양짓녘의 진달래꽃들은
배시시 눈웃음을 치지만
조금 응달쪽의 꽃들은
아직도 얼음코팅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영어(囹圄)의 몸인채로 수심에 차 있고 ---
제석봉 남쪽 비탈의 구상나무는
자기 몸에 크리스머스 트리를 장식해 줄 사람 어디 없나
은근히 기다리는 눈치인데 .....
비록 고사목이 되어서라도
젊은날의 멋스러움을 잃지 않고,
제석평전을 지키는 자기 후손들에게
귀엣말로 노하우를 귀뜸해주는 모습이
마냥 다정스럽기만 한데 -------
제석평전 천왕봉 오르는 길
오른편 남녘 기슭은
구상나무 삼림으로 울창한데,---
왼편의 서북쪽 평전은
아직도 방화의 흔적이
60여년이 흐른 지금 까지도
아물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네요.
제석평전 오른편(남쪽 기슭)의 삼림
제석평전 왼편(서북쪽 사면)의
일부 복원된 삼림 모습 ---
이곳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아직도 답보 상태로 남아 있네요.
제석평전 전망대에서
천왕봉을 향해
산허리의 암봉 아래로 우회한다.
암벽에 뿌리를 내리고
써커스를 하듯
내 길 위로 반쯤 몸체를 뉘인
구상나무 한 그루가 이채롭다.
천왕봉이 가까웠는데도
여전히 그 개체수를 줄이지 않는 얼레지 ....
나와 가까이 하려는 여인네들에 대한 질투심의 발로인가
현호색 외에는 보이지 않는 이곳에
얼레지 홀로 유독 내 길섶을 독차지하고 있다.
바위상고대라 할까
서릿발이라 할까 .....
상당한 높이의 암봉을 온통 뒤덮은
특이한 얼음꽃!~~~
그 경이로움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유난히 짙푸른 그대 미소 ---
이 높은 고원을 지키며
푸른 하늘,
푸른 바람과 함께 지내다 보니
그리 되었구려!
하지만 난
그대의 그 푸르름이 좋아
이렇게 고원 위의 그대를
살포시 가슴에 안아 본다오!~~
오전 내내 음산하던 날씨가
정오가 지나자 밝아져
백무동쪽이 환하게 트이네요.
바로 통천문 앞인데도
눈 덮힌 소나무들이 입구를 절묘하게 은폐해
전혀 보이지 않네요.
먼데 ..
고도가 낮은 봉우리들은
이제 완전히 눈의 흔적이 사라졌어요.
ㅎㅎㅎ
마치 잘 다녀 가라는 포즈를 취하는 듯
누군가의 손길로 잘 다듬어진 나무 한 그루
이 나그네를 배웅합니다.
이제 천왕봉으로 오르는
마지막 계단 앞에 섰습니다.
오늘 지나 온 능선이
가뭇히 눈에 어립니다.
나에게
진정 아픔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신
그 큰님의 무언의 계시가 내리던
그 시간들 ---
그 순간들 ---
이제 밝음 속에서 보이는 물체와
흐림 속에서 보여지는 물체는
그 자체의 속성과는 별개의 문제로
너무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나네요.
하얀 눈옷을 입은
구상나무 한 그루 --
비록 반쯤만 맑은 하늘 아래 이건만
너무 단아하고
초연하게 보이는군요 .... ㅎ
산자와 죽은자의 공통 영역!~~
인간 세상에서도
이곳에서 처럼
죽은자의 영혼도
일정 기간 동안
산자들과 함께 어울려 지낼까요?
장터목에서 중산리로 내려가는 계곡 ~~~
안녕, 잘 있었나요!
그리도 그리던 천왕봉님!~~
오늘은 천신만고 끝에
당신을 보네요.
어제와 오늘
제 흔적을 돌아 보니
마치 꿈길 속을 거닌 것 같아요.
당신을 다시 또 볼 기회가 올까요?
제 욕심으론 그러고 싶지만
알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연이네요.
그러나 오늘은
정말 감사했어요.
완벽한 하나의 선물 셋트!~~
이렇게 얘기할 수 밖에 없네요.
사랑해요.
지리산!~~~
나를 안아 낳아주신 큰님이시여,
오늘 중산리로의 하산길 ---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카메라 밧데리가 소진되었다.
내려 오는 길 -
내 길가의 나무들이 눈물을 뿌립니다.
아쉬워하는 내 마음을 달래 주려는가
내 어깨 위로, 내 발길 위에 --
큰님이시여,
나는 어제 부터 오늘 이 시각 까지의 일들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저에게 주어지는
그 어떤 어려움이라도
한 걸음 더 물러서서 보면
더 큰 은혜의 길이고
더 고마운 배려의 마음이 깔려 있음을 제 아노니
당신을 믿고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저를 지켜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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