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 07-29일 23시 50분
남부터미널에서 함양군 백무동행 심야버스에 오릅니다.
설악산 울산바위 서봉의 곰바위 산행예약을 취소한 서운함을 달래려
오랫만에 지리산 무박산행에 나선 것입니다.
요즘 열대야가 계속되어
밤에 거의 잠을 잘 수가 없으니
차라리 지리산 품속을 더듬으며
옛추억도 더듬어 보고 싶어서죠.....
백무동에 새벽 3시30분에 도착하여
간단히 베낭을 정리하고
3시40분 부터 산행을 시작합니다.
백무동 한신계곡 한 펜션의 주차장..
안개비가 촉촉히 내리는 꼭두새벽이지만
휴가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열기에 들뜬 목소리들의 어울림이
홀로 거니는 산나그네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어
나의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합니다.
한여름 밤의 한신계곡....
헤드-랜턴을 향해 날아드는
부나비와 하루살이들의 돌진에
상당히 성가신 산행길이네요.
캄캄한 어둠의 계곡을 지배하는 폭포의 굉음에
몸은 땀에 흠뻑 젖고
가슴은 서늘한 기운으로 가득찹니다.
이밤에도 쌍계사 까지 간다며
나를 어둠속에 남겨두고 앞서가는 한 산사나이 ...
가내소폭포(2008-11 01)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가내소폭포의 모습이 그리워
지난날 담아 왔던 그의 모습을 올려봅니다.
산수국은 새벽 안개비에 젖고
폭포소리의 음영을 헤집고 울려 퍼지는
산새들의 야무진 새벽찬가를 들으며
나도 이제 부터는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겠다고 다짐도 해 봅니다.
극심한 가뭄 끝에
요즘 비가 조금 내리긴 했지만
아직도 턱없이 모자라는 강수량 탓에
지리산의 식물군들은 꽃도 열매도 예년만 못하네요.
요즘의 이곳 지리산에서는
산수국과 말나리꽃들이
가징 화려한 자태를 뽑내네요.
강인한 생명력의 화신... 이끼류!
영하 수십도의 강추위 속 얼음에 몸을 내어주면서도
얼음이 제 몸에서 풀려 나가면
언제 그랬었냐는 듯,
온 여름의 뙤약볕과 무더위를 홀로 감내하며
바위와 나무뿌리와 뭇 풀들에게
힘들여 갈무리해 둔 수분을 아낌없이 건네주는 그대!~~
아름다운 그대 이름은 이끼!~~
하늘말나리
이곳에서 다리를 건너
계곡의 오른편으로 가파른 경사로를 따라 오르면
세석대피소가 있는 능선에 이릅니다.
10여년 전 이곳을 오르면서
너무나도 힘들었던 이 구간.......
그래서 은근히 걱정이 앞서기도 하였었네요.... ㅎ
비에 젖은 비비추
약간의 빗줄기가 내리면서
겁을 주기도 했지만,
무사히 도착한 세석대피소 뜨락에선
갖가지 꽃들이 고운 옷으로 갈아 입고
환영준비를 마쳤네요................. ㅎ
마타리
설악산의 금마타리 보다 조금 키가 커요.
아직 만개하지 않았군요.
원추리와 잠자리가 <평화>라는 상황을
몸소 시연해 보여주고 있어요...... ㅎ
세석대피소
십 수 년전
이곳 세석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묵고 싶다는 그 산우님과 함께
처음으로 들려서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던
추억의 그림자가 소슬 바람 따라 실려 오고....
지금은 어디론가 흩어진
그 때 그시절의 산우님들!~~
그립다 말을 하면 돌아 올까?
대답이라도 해 줄까?
세석평전의 언저리엔
무심한 안개 장막만이 두텁게 쌓여
길을 막고, 메아리를 잠재우네.
세석평전과 대피소와의 짧은 해후를 뒤로 하고
지친 다리를 끌고
장터목으로 향합니다.
안녕!~~
세석대피소여,
세석평전이여,
순수했던 내 생의 한 토막이여!~~~
이제 내 생에서
다시는 그대를 만나지 못할지라도,
아름다웠던 그 순간만은
어느 하늘 끝까지 날아간다 해도
그곳에서 또 다른 나의 영토를 이루기 위해
은하의 별 처럼 쏟아져 내리리라,
그리운 순간들을 보듬고!~~
비비추(좋은 소식, 신비로운 사랑)
사랑의 신비?
신비로운 사랑?
십 수년전의 모습 보다
많이 황폐화되어 있는 세석습지!~~
~~~~~~~~~~~~~~~~~~~~~~~~~
세석대피소의 그 밤!
우리 일행 10명중 5~6명은
어둠을 헤치고 이 세석습지 옆의 작은 바윗돌주위에 둘러 앉아
한밤의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하늘 하나 가득히 별들은 찬란히 빛나고,
주위의 풀숲에선 온갖 풀벌레들의 현란한 현악중주가
우리의 심금을 그윽히 울려주는데,
우리는 그곳에서
동요와 가곡과 유행가와 가요를
찬이슬에 젖어 우리 몸이 으시시 해 질 때 까지
번갈아 부르며 동심에 젖어들었었습니다.
금방망이
네귀쓴풀
쓴풀은 꽃잎이 다섯개 인데
욘석은 네개라서 이런 이름을 얻었군요...... ㅎ
긴산꼬리풀
욘석도 산꼬리풀 보다 기럭지가 길어서
이런 이름을 얻었구요................... ㅎ
이제 촛대봉으로 오릅니다.
바위들이 바스라지기 쉬운 암석이어서일까?
여기 저기 금줄을 쳐 놓아
출입과 접근을 제한하고 있네요..... ㅎ
산상에서의 한밤 음악회가 있었던
그 다음날 아침
바로 이 촛대봉에 올라 환상적인 해돋이에 탄성을 연발하였었는데
이제는 그곳을 들어 갈 수가 없네요.
돌아갈 수 없는 그곳,
그러나 돌아 갈 수 없는 곳이 어디 이곳 뿐이겠는가?
촛대봉에서
이 봉우리 뒷편에서 일출을 구경했었는데!~~~
촛대봉의 일출
2008년 가을 ...
어느 새벽 ..
하늘말나리와 나비의 유희
살아 있는 존재들의 최적의 조화는
최전성기 시절에 최전성기의 커플을 맞이하는 것인 것을 ....
미역줄나무꽃
시악시의 볼 처럼
유난히 해맑고 깊은 그 미소에 취하나니 ...
구상나무 군락지를 지나며..
삶과 죽음은 무엇인지....
때때로는 내 곁을 떠난 이들이
아직도 내 곁에서 숨을 쉬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지금 이 구상나무들도
나에게 그런 느낌으로 다가 오나니....
톱바위취
꽃인 듯
그림자인 듯...
그리하여
나는 그대를 안개꽃이라 부르려 했다네.
꼭 이 시기에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만 알아 볼 수 있는 그대
야멸차고 내찬 그대!~~~
나는 그대의 숨결이 토해 놓은 안개 그물에 갇혀서
수시로 길을 잃고
물기 촉촉한 바위틈,
그대의 보금자리에서
동심의 놀이들로 원을 그리다
문득 깨어나
거친 황야의 길손이 되나니....
비비추
왜 님들은
한 방향을 향해서만 미소를 보내시나요?
별 수 없는 태양의 후예들!~~~
촛대봉에서 장터목 구간은
이처럼 구상나무들의 천국이군요.... ㅎ
안개에 젖은 구상나무 군락지
장터목대피소 오르는 길
잔대
산오이풀
비비추
구릿대
구절초
어느 덧 가을이 가까이 왔나 봐요.
가을을 부르는 구절초들의 은은한 노랫가락!~~
구절초의 자태에 마냥 눌려 있을 수 만은 없다는 듯
참취들도 마지막 힘을 다 하여
아름다움을 뽑내 봅니다.... ㅎ
꿀풀
기름나물(전호)
이제 연하봉에 가까워집니다.
연하봉 주위에서
송이풀
나의 지나 온 자취를 영원히 갈무리 하려는 듯
내 행적을 안개비로 감싸 내려
자신의 살갗에 문신을 하고 있는 지리산!~~
금방망이
분취류
무슨 분취인지는 모르지만
이 분취도 구절초와 함께 가을을 부르고 있어요....
지리터리풀
지리터리풀(2013-07-16)
지리산 무박산행(성삼재 ->천왕봉)때 담은 모습
터리풀중에서도 지리산의 터리풀꽃은
정말 아름다운 자태를 뽑내고 있었습니다.
4년 전 그 여름밤의 열기 속
성삼재에서 부터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서 춤추며 따라 오던
그대!~~
천상의 꽃이여..... 지리터리풀꽃이여!~~~~
풀솜대 열매
하늘말나리님이시여!~~
어딘지 우중충하고 묵직해 보이는 제 차림에
저는 늘 불평이 많았었지요.
그래서 오늘은 큰맘 먹고
당신을 모셔 왔어요.
비록 당신을 만족스럽게 대접해 드리지는 못하지만
제 마음속에 당신을 여왕으로 모시려 하오니
다소 불편하시더라도
저의 영토에서 저희들의 영주님으로 남아 있어주세요.
말나리여왕의 미소가
관중(고비)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 준 후에야
비로소 관중의 푸르른 세계가 완성되었네요.... ㅎ
드디어 장터목대피소에 이릅니다.
어젯밤 거의 꼬박 밤을 새웠기에
피로가 밀려옵니다.
장터목대피소!
야외 탁자에는 빈자리가 없어
그냥 자갈밭 땅바닥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읹아
빵으로 간단히 아침겸 점심을 마칩니다.
너무 갈증이 심하고 피곤하기도 하여
대피소내의 판매대에서 캔맥주를 주문했으나
주류는 전혀 판매하지 않았고,
따뜻한 식품은 열을 가한 햇반 외에는 없었네요.... ㅎ
천왕봉을 오르면서 내려다 본 장터목대피소
오늘 내려가야 할
장터목대피소에서 백무동 사이의 산기슭이
안개에 쌓여 있어요.
구상나무 고사목이 인상적이군요...
특히 제석봉 부근에 구상나무 고사목이 많아요.
널따란 평원위에 간간히 옛 영화을 반추하 듯
구상나무 고목 몇그루가
자기 나신을 휘감으며 지나가는 안개의 포말에게
*나에게도 빛나는 청춘이 있었답니다*라고 나즈막히 속삭입니다.
이곳 제석봉 주위에는
아무리 둘러 보아도 봉우리 다운 봉우리는 없고
드넓은 평원 같은 산기슭만 시야를 가득 차지하네요.
제석봉에서
가뭄이 극심할 때 맺어진 꽃봉오리런가,
꽃잎의 균형이 잘 잡히지 않았군요.
안개속에서는 그 어디를 둘러 보아도
있을 것 같지 않던 봉우리가
이렇게 단애의 상태로 선을 보이네요..... ㅎ
기름나물꽃(전호)
돌양지꽃
안개가 자욱히 끼면 보이지 않던 봉우리들이
안개가 걷히면 어디에 숨어 있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일까?
봉우리와 안개와 내가 숨박꼭질을 하고 있군요.
산신께 제사를 드렸다는 제석봉의 평전에는
잔대와 모싯대, 참취와 동자꽃, 지리터리풀꽃과 하늘말나리,
기름나물꽃들과 금방망이꽃들이
마치 꽃방석을 방불케 하네요.
이제 고만 담아야지 .... 하면서도
자꾸만 담게 되는 하늘말나리!~~
그대는 왜 자꾸 나의 의지를 꺾어버리는가?
아름다움을 향한 나의 대책없이 처절한 몰입이여!~
술패랭이
야생에서는 처음으로 담아 보는 술패랭이!~
언뜻 보면
마치 절규하는 듯한 하늘타리를 닮은 그대!
이제 어디로들 간 것일까?
그리운 얼굴들을 하나, 둘 떠 올리며
산발이된 촉수 패랭이를 쓰고
오늘도 정처없는 여정에 오릅니다.
해체기가 다가 온 지리터리풀꽃의
헝클어진 모습이
나에게 슬픔을 안겨줘요.
금방망이
범꼬리
참조팝나무
통천문
이 문을 통과하여야만
신성한 천왕봉에 오를 수 있다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암문
통천문을 지나 중산리 쪽을 내려다 보니
안개의 바다!~~
네귀쓴풀
며느리밥풀꽃
드디어 천왕봉을 목전에 두었지만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험상궂은 날씨로 변하네요.... ㅎ
돌양지꽃
잠을 안자고 무더위 속에서 악전고투한 흔적이
그대로 얼굴에 나타나 있어요..... ㅎ
내려 가는 길....
간식으로 허기를 떼우려는데
추슬 추슬 여우비가
산나그네를 종잡을 수 없게 만듭니다.
이제 언제 또 다시 와 볼 수 있을런지....
내려가는 발걸음이 무겁네요.
이제 장터목에서 하동바위를 거쳐서
백무동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다시 통천문을 지나려니
미역줄 시악시가 곱다란 볼에
눈도장을 찍어주고 가라하네요..
통천문을 지나며
꿩의다리
다시 들꽃들의 노래가 이윽히 울려 퍼지는
제석평전을 옆에 끼고
장터목대피소를 향해
갑자기 굵어진 빗속을 헤치고 내려갑니다.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 그 길을
아쉬운 마음 조차 잃어버리고
허겁지겁 내려 옵니다.
참으로 가엾은 산나그네!~~~
나그네의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분취는 그렇게 또 지리산의 품에 안겨
영그는 꿈들을 꽃술에 새겨 넣으며
가을을 맞으러 여름의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바위채송화
백무동에 6시에 도착하여
6시30분 남부터미널행 버스에 오릅니다.
이제 앞으론 체력소모가 너무 많은 무박산행을 지양하고
될 수 있는 한
1박2일 코스를 택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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