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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가야동계곡(천왕문) -

 

29024

 

가야동계곡!~~

난 당신을 만나기 위해 40여년 동안을 가슴 조이며 지냈어요.

 

40여년전 어느 여름날 저녁,

저는 수렴동대피소에 여장을 풀고

바람만 바람만 따라

가야동계곡으로 젖어 들어 갔어요.

 

그때는 지금 처럼 출입통제가 되어 있지 않았던 듯

대피소에서 약간 올라 간 지점에서도

몇몇의 야영객들이 모여 앉아

별밤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밤이 이슥하도록 술렁거리던 수렴동대피소 숙소에서

쾨쾨한 냄새가 쪄든 이부자리를 덮고 새우잠을 자고난 후

새벽녘에 다시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가야동계곡 쪽으로 산책을 나갔어요.

 

언제 부터 이곳에 있었던가

수직의 암벽 아래에선

혈색이 좋아 보이는 건장한 중년의 서양 남성과 

한국 여성인 듯한 두 사람이 오손도손 정담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찌 그리 다정해 보이던지.....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까지도 내 기억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네요.

 

그리고 여기 저기에 옹기종기 흩어져

야영불에 그을린 검은 얼굴의 바위들은

그곳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다 떠나간

그 누군가의 즐거워하던 모습을 전해주고 있었어요.

 

그곳이 바로 천왕문이었던가 봐요.

 

그때 이후로 난 가야동계곡에 발을 들여 놓지 못했어요.

수렴동계곡을 오를 때 마다

그리고 오세암을 지날 때 마다

늘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가야동계곡,

그리고 천왕문!~~~

 

그 그리움의 흔적을

오늘은 만나 볼 수 있을까요? ....

 

<흑선동계곡 입구>

 

거의 25일 이상

폭염경보와 열대야 현상으로

온 나라의 생명체들이 기진맥진해 있고,

 

평소에는 계류의 위용을 자랑하던 이 수렴동계곡

물줄기가 실개천 처럼 가늘어져 있어요.

 

수렴동대피소 옆의 가야동계곡 입구에서

가야동계곡쪽을 조망해 봅니다.

 

*용의 이빨(龍牙)*이라 칭하기 보다는

차라리 말갈기라 부르는 편이 적절할 것 같은 암봉!~~

 

그리고 이 암봉을 통과하려면 게 처럼 옆으로 기어 가야 한다 하여

사람들은 이곳에 *게구멍바위*라는 별칭을 붙여 놓았네요.

 

게구멍바위

 

수렴동대피소옥녀봉쪽에서

용아장성을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하여야만 하는 곳이네요.

 

한 번 실수하면

까마득한 절벽아래로 추락하여

치명상을 당하는 위험한 구간이랍니다.

 

요들산악회 회원님들이

이곳에서 조난을 당한 악우(岳友)의 명복을 빌면서 부착해 놓은 동판(銅板) 하나가

아직도 이를 보는 이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드네요.

 

 

저 위 쌍둥이 같은 두개의 암봉중

아랫쪽 암봉의 왼쪽 허리 부분으로 

게구멍이라 불리는 크랙이 나 있습니다.

 

그리고 위 게구멍바위 쪽에서 내려다 보면

아담하고 아주 정갈한 기념비가 하나 내려다 보이니,

바로 여기 이 작고 검은 비석이랍니다.

이 비석도 아마 어느 산우의 명복을 비는 뜻이 담겨 있겠죠?

 

 

내가 언제나

더 할 수 없이 다정한 눈길로 내려다 보며

더 많은 다정한 얘기들을 나누고 싶었던

아담하고 고고한 암봉과 비석을 배경으로 ............

 

 

잘 있어!

내가 늘 그리던 외롭지만 정답고 아름다운 봉우리여!

 

다정한 얘기들을 언제 또 다시 나눌 수 있을까?

이 나의 작은 바램이 가능하기나 한 바램일까?

 

하지만 모쪼록 방가웠어,

비록 나는 이제 머잖아 떠나겠지만

그대는 거기 그대로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그대가 여지껏 나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었듯이

그대를 바라 미소짓는 많은이들을 위해

그윽한 설악의 솔향기를 전해주어요....

 

안녕!~ 안녕!

잘 있어,

내 맘속의 작은 바위 봉우리여!~~~~~

 

이제 뜀바위를 향해 내려 갑니다.

 

공룡능선엔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이 피어 오르고

나는 가야동계곡을 만나기 위해 만경대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아주 멀리에 서북능선상귀때기청봉

의젓한 자태로 팔짱을 껸채로 버티고 서 있고

그 경사면을 따라 사태골건천골

깊은 주름살을 그으며 구곡담계곡으로 합류해 들어 갑니다.

 

 

뜀바위에서

 

뜀바위

 

말로만 듣던 뜀바위'

오늘에야 만나게 되었군요.

 

게구멍바위 뜀바위,

그리고 끝없는 밀어들을 속삭이고 싶어지는

아담하고 정겨운 비석바위들이 모여 있는

옥녀봉 능선길...

 

 

 

 

 

 

만경대

 

멀리 뒤편으로

백운동의 능선들도 모습을 나타내네요..... ㅎ

 

옥녀봉

 

 

자연을 담아내는 진사의 모습은 항상 진지하고 ....

 

옥녀봉쪽에서 내려다 보는 구곡담계곡

 

극심한 가뭄으로 앙상하게 바닥을 들어내 놓고 있어요...

 

 

이제 마가목도 가슴을 들어내 보이며

빠알간 열매를 선물로 안겨 주고 싶다하네요.

 

가는잎구절초

 

이제 가을이 성큼 앞으로 다가 앉아요.

 

옥녀봉을 오르지 않고

안부에서 가야동계곡으로 내려 갑니다.

 

내려가는 비탈길은 가파르고

잔돌 부스러기들과 발목을 덮는 낙엽과 잡목들이 얼켜 있어

여간  힘들지 않는 구간이었어요.

 

미역취꽃

 

옥빛의 담소(潭沼)들은

하나 같이 푸른 하늘과 그 하늘에 흐르는 구름들을 품고

바람에 흔들리며 잔물결을 어디론가

아주 멀리 멀리 내 보내고 있었어요.

 

마치 연자세의 연실을 풀어

연을 하늘 끝까지 보내려는 소년 처럼,

그렇게 잔 물결의 자세를 풀어

그 물결을 땅속 그 끝간데 없는 나락으로 자꾸만 보내고 있네요.

 

이제 천왕문 아래 당도한 것일까요?

저 앞에 웅장한 바위문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의 곁 가까이 지나치면서도

그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

가까이 다가설 수 조차 없었던 가야동 천왕문....

 

드디어 나는 오늘

그 문고리에 매달려

간절한 눈빛으로 그에게 구애를 합니다.

 

* 그대를 잊지 못하여 찾아온 나를

부디 내치지 말고 받아주세요 !*라고 맘속으로 당부하며 ...

 

 

 

 

드디어 천왕문이 반쯤 열립니다.

 

나를 맞는 이

그의 번쩍 들어 올린 손에서

무지개빛 허가증이 찬란합니다.

 

천왕문에서

 

그대 가까이 품어 주어서 고마워, 나의 천왕문!

그대 곁에 서기가 너무나도 어려웠었어

 

하지만 내 생애에 이렇게 한 번만이라도 더

그대와 함께여서 얼마나 황홀하고 좋은지!~~~

 

 

 

멋진 모자를 살포시 얹어 쓰고 앉아

진종일 설악의 소리를 귀담아 들으며

천왕문 푸른 호수 화선지에

하늘과 구름과 바위와 숲과 해와 달을

솔향먹을 풀어 그려 넣고 있는 그대.....

 

나의 친구여!

천왕문의 나그네 바위여!~~~

 

정말 오랜만의 해후에

뭐라 말 할 수 없이 벅찬 가슴......

 

그 무거운 기쁨을 안고

가물어 매마른 계곡을 거슬러 올라

봉정암 <->오세암의 연결선상의 길위에 섭니다.

 

오세암 가는 길에서

 

군락을 이룬 꽃며느리밥풀꽃

수고했노라고....

 

그리고 이제 천왕문도

나를 만나서 무척 방가웠을 거라고 

가만히 내 가슴문을 열고 알려 주네요......  ㅎ

 

옥녀봉 능선 뒤로

멀리 소청, 중청봉이 아련히 잡힙니다...

 

오세암 오르는 중,

어렴풋이 보이는 천왕문 상단의 바위.....

 

그의 작은 한 부분만 눈에 띄어도 

내맘은 이렇게 대책없이 설레이는 것을!~~~~ 

 

오세암에서 ...

 

나는 어느새 설악과 함께

낯선 노옹이 되어 있네!~~~~  ㅎ

 

만경대에서 ........

 

어느 가을날

 

이제 모든 추억의 편린들은

이렇게 맑은 물이 되어

내 마음의 호수에 잠겼거라.

 

때론 목마름으로 다가서는 그리움이 있거들랑

이렇게 정겨운 어느 날

사념의 가지를 흔들어

한 닢 낙엽으로 그 호숫가에 내리리니

 

비록 꿈 같은 세월이었다 할지라도

내 덧없는 생을 탓하지 말자

 

내 추억속의 그 사랑은

그 세상을 지탱했었고,

내 그리움의 그 세월은

지금도 이 우주를 관통하여 흐르고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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