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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강가

뱀사골의 추억

 

28834

 

 

1975년 이던가

하여튼 그 무렵....

나의 청년시절 한 해의 마지막 날

 

저는 어느 조용한 산사나 계곡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한 해를 마무리 할까 하는 생각으로

지리산 자락의 뱀사골을 선택했습니다

 

그 즈음의 뱀사골은 

세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계곡이었지만

이곳에 거주하던

한 열성적인 애향민에 의해서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처음 제가 이 계곡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전북지방의 유력 일간지인 모 신문 칼럼을 통해서 였습니다

 

그 신문 칼럼에서그 주민은

궁벽한 산골 동네의 절박한 사정을 소개하면서

수년 전의 폭우로 동네 다리가 떠내려 가서

초등학교 학생들이 비만 내리면 등하교를 못하는 형편이니

다리 하나만 놓을 수 있도록 선처를 해 달라는

간절한 하소연과 함께

이곳의 아름다운 사계에 대해서 세세히 소개하면서

너무 아까운 관광자원이니

속히 개발을 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고 있었습니다

 

'75년경의 12월 31일,

저는 남원에서 막차를 타고

반선(뱀사골 초입의 동네:버스 종점)으로 향했습니다

 

때 마침 내린 폭설로

계곡길을 따라 이어진 소나무들은

눈의 무게에 짓눌려 가지가 찢어질 정도로 휘어져서

금방이라도 버스의 지붕에 부딪칠 것 처럼 위험스러워

도저히 종점 까지 갈 수 없을 것 만 같았습니다

 

어느덧 날은 칠흑 처럼 깜깜해졌고

폭설로 뒤덮힌 계곡은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개울인지

분간을 못할 정도여서

버스는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여 나뭇명 되는 승객들도 숨을 죽이고

버스의 헤드라이트 안에 들어 오는 전방만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가는데

갑자기 헤드라이트가 비춰주는 영역 밖 저 멀리에서

작은 불빛이 보이더니

버스가 가까이 갈 수록 그 불빛은 큰 불덩어리로 변했고

더 가까이 다가 간 버스의 헤드라이트 속에 드러난 모습은

한 남루한 남자가 횃불을 들고 휘두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이고, 누군가 혔더니 우체부 그만*

누군가 앞좌석에 앉아 있던 사람이 아는 체를 했습니다

 

버스가 멈춰섰고

거의 사색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옆 얼굴을 싸매도록 되어 있는 방한모를 눌러 쓴 우체부가

연신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겸연쩍어 어쩔 줄 몰라하며

버스에 올라 탔습니다

 

*우체부 10여년 동안에 오늘 같은 날 처음 보네,

아, 글씨 저 길 모퉁이를 돌아 오는디

갑자기 무신 불빛이 산 옆구리서 나타나더니

나만 계속 따라 와 무서워서 혼났네.

그려서 정신이 나가 자전차도 내 팽개치고 오는 중이래니깐요*

솜을 누빈 핫바지에다 헐렁한 외투를 걸친 그는

추위와 두려움이 범벅되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계속 따라 왔다던 그 불빛은

아마도 삵이 아니었을까 생각하지만

어둠 속에 혼자 내버려진 그는

그 불빛을 호랑이의 눈으로 여기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도착한 반선(半仙)....

 

그러나 저는 당장 그날 밤

잠을 잘 숙소도 마련되지 않아서

일단 버스 매표소 겸 구멍가게를 하고 있는 집으로 들어 갔습니다

 

*저, 이 근처에 하룻밤 묵어 갈 수 있는 집 없을까요?*

*어디서 오셨습니까?*

*전주서 왔는디요*

*그럼, 오늘 밤은 우리집에서 주무세요, 식사는요?*

*먹어야죠, 밥 좀 있습니까?*

*저녁 밥은 다 먹고 치웠지만, 찬밥이 쬐끔 있으니 챙겨드릴께요

찬은 없어도 좀 드세요*

 

저는 주인이 권하는 방으로 들어 갔습니다

흙과 나무로 지붕을 얹은 헛간 모양의 널따란 방에서는

오랫 동안 벽지에 베어 있던 담배연기의 진액이

독한 니코친의 기운을 여지없이 발휘하여

목구멍과 폐부를 맘껏 유린하고 주눅이 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방에는 제가 들어 서기 전 부터

희미한 호야불빛 아래 모여 있던

서너명의 촌부들이 얘기를 나누다 말고

저에게 심상찮은 관심을 나타내며 말을 아끼고 있었고

식사 준비가 되는 동안에도

한명씩 두명씩 모여들던 사람들은

식사가 다 차려져서 밥을 먹는 동안에는

어느 덧 10여명의 남정네들과

이집 안주인등 두어명의 여인이 섞여 앉게 되었습니다

 

구수한 된장국에

몇가지 갈무리해 둔 산채나물로 배를 채우고 나자

자기들 끼리 인삿말과 동네 얘기로 꽃을 피우던 사람들 중

예의 그집 주인인 듯한 남자가 말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말이 시작되자 마자

저는 그가 바로 얼마 전에 지방신문에 칼럼을 기고했던

이곳 유지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6.25 한국전쟁 당시

그는 인민군 대령으로

이곳 지리산 일대를 관할하는 부대의 연대장이었고

그 방안에 가득 모여 앉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그의 부대원들 이었습니다

 

이름은 *황의지*

그는 과거에 패잔병과 포로의 신분이었기에

자기의 무용담은 숨긴 채

이곳에 쏟아 부은 그동안의 자기의 노력에 대해서

설파에 가까운 열정으로 말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제가 신문에서 읽었던

이 지방의 궁벽하고 열악한 환경과

그에 어울리지 않게 아름다운 뱀사골의 풍광들

 

그런 것들에 대해서

그는 25년 가까이 돌아 갈 수 없는 고향 대신에

자기에게는 마치 고독한 섬 같은 이곳을

새로운 고향으로 받아들이는 체념의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체념이

도전이니 응전이니 하는 화사한 어휘 보다

더욱 더 아름답고 가치 있어 보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자기 얘기에 도취되어 있던 그는

한쪽 벽장문을 열더니

묵직하고 두꺼운 책 한권을 꺼내 들었습니다

 

향토 사학자들이 집필한 *남원의 역사*였습니다

 

그는 옛날 삼한 시대에는 중앙정부에서

이 부근의 전략 요충지에 정장군과 황장군을 파견하여

그들이 거느리는 군대가 주둔하였던 장소를

각각 정령치와 황령치라고 명명하였고

국방의 경비에 엄중히 대처하였지만

현재는 정령치의 위치만 확인되고

황령치는 그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노라고 했습니다

 

그의 역사 얘기가 시작되자

방안의 모든 사람들은 어쩌다가 추임새로 한마디 씩 거들 뿐

방안의 공기는 그의 강의의 열기로 후끈할 지경이었습니다

폭설에 갇힌 이 계곡은 추위로 가득할 테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이 계곡 주위에는 예전에

송림사(松林寺)와 배암사(配岩寺)가 있었는데

지금은 두 사찰 모두 소실되어 흔적 조차 찾아 볼 수 없지만

이 계곡 안에 있던 배암사의 이름을 따서

이 계곡을 *배암사골*이라고 불렀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와전(訛傳: 그릇 전해짐)되어

*뱀사골*로 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그는 반선(半仙: 반절만 신선)이라는 이 동네의 유래며

지리산 불곰의 이야기와

그가 평생의 역작으로 여기며

이 계곡 안에 자기가 명명해 놓은

요룡대, 병풍소, 병소, 간장소,반선의 이름이 유래된 탁용소(濯龍沼)등에 대해서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얘기에 열중하다 보니

어느 덧 제야의 종소리가 울릴 시간이 다 되어

라디오를 켜고 잠간 보신각 종소리의 은은함에

한 해의 마지막을

고향길 막혀 어느 낯선 웅덩이에서 푸덕거리고 있는

연어 무리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

 

이튿날 아침

저는 주인 아줌마가 차려주는

맛깔스런 계곡의 산채 음식으로 만족스런 식사를 마치고

끝을 뾰쩍하고 날카롭게 날을 세운 대나무를 무기 삼아

눈 덮힌 뱀사골로 들어 갔습니다

 

황의지씨 등 동네분들이

이 계곡 안에는 불곰 등 무서운 맹수들이 살고 있으니

절대로 혼자서는 들어 가지 말라는 당부를 뿌리치고 가려니

맘 한 켠에 약간의 두려움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었나 봅니다

 

눈덮힌 계곡안에는 공비토벌을 하기 위해서 철수시킨

화전민들의 흔적인 집터와 그들의 손떼 묻은 멧돌과 그릇

그리고 완성되지 않은 목기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딩굴고 있었고

아직 황폐화가 덜 된 밭뙈기들에서는

아직도 꺼지지 않은 화전민들의 애환의 노래가

가슴을 울리고 지나갔습니다

 

저는 보았습니다

 

길잃은 철새들의 눈동자가

요룡대의 움푹 패인 골안에서 아프게 빛나고 있슴을....

 

그리고 저는 또 들었습니다

 

길잃은 연어들 무리의 노래가

탁용소와 간장소의 저 깊은 심연에 침잠되어

드러내지 못하는 휘파람으로 소용돌이 치고 있는 그 울림을....

 

발목이 빠지는 정도의 눈이 소롯길을 덮었고

양짓녘 비탈길엔 눈이 녹아 내리지만

응달진 비탈에는 아직도 흰눈을 무겁게 등에 진 소나무들이

고개를 숙이고 시립해 있는데

가끔 찢어진 나뭇가지들과

뭇 동물의 날카로운 발톱에 할퀸 나무 줄기의 상흔이

조금은 두려운 경계심을 주기에 충분한 산행길이었습니다

 

저는 간장소에서 1Km남짓 더 가서 발길을 멈추고

땀이 벤 얼굴을 씻을 겸

얼음 사이로 약간 얼굴을 내어민 바위틈의 계곡물에 쭈그리고 앉아서

물에 비친 내 얼굴을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훌쩍 가볍게

내 옆의 바윗돌을 즈려 밟는 기척을 느껴서

깜짝 놀라 얼굴을 들어 보니

얼굴 혈색이 붉으스레하고 달덩이 같이 젊은 왠 까까머리 여승이

막 개울을 건느려 하는 참이었습니다

 

가벼운 잿빛 차림의 승려복으로

신발도 아마 검정 고무신을 신었던 듯

하여튼 아주 간단한 개나리 봇짐으로 행랑을 꾸민 그녀.....

 

나도 그녀도 놀라서

서로 마주 보고 아무 말도 못하고 지나쳐 버렸지만

그 눈덮힌 뱀사골 계곡의 여승이

아직도 가끔은 생각나는 것은 또 왠 심사인가?

 

~~~~~~~~~~~~~~~~~~~~~~~~~~~~~~~~~~~

 

그 후로도 수년에 한 번씩은 찾아 가 본 뱀사골

 

어느 해였든가는 휴가철에 폭우가 쏟아져

많은 희생자를 내기도 했었고

그 청정지역에도 전적기념관이 건립되고

성삼재를 넘어 구례로 이어지는 지리산 관통도로가 개설되었으며

계곡을 따라서 공원이 조성되어

신작로와 곳곳에 모종이 들어 서 있는 뱀사골의 모습 ....

거기에는 이미 예전의 순수는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구름이 떠 있는 부운리(浮雲里)

구름이 누워 있는 와운리(臥雲里)

그리고 석양 비낀 붉은 구름이 한가로운 채운리(彩雲里)

 

그 고요하고 신비롭고 또 많은 그리움을 간직했던 계곡....

 

그러나 이젠 차단된 고속화도로에 막혀

이동로를 빼앗긴 야생동물들과

매연 까스에 시달리는 초목들과

속세의 오물들이 하나 둘 씩 문신 처럼 남겨지는 계곡의 아픔...

 

숲은 우리에게 가까이 올 수록

그리고 또 우리가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될 수록

하나 둘씩 옷이 벗겨지고

그 벗겨지는 맨살 위로는

어느 새 치유가 어려운 부스럼이 자리하고 .....

 

이제 킬리만자로의 만년설도 사라지고

북극과 남극의 빙하도 녹아 없어지고

아마존의 밀림도 목축을 위한 초장으로 변해버리고

인도네시아나 시베리아의 삼림도 황폐화가 되어 버리면

어디에서 산소를 공급받아 숨을 쉴수가 있을까

 

하늘에서 내려다 본 우리의 산야도

아파트나 도로, 또는 골프장 등의 용도로 전용된 삼림들이

깊은 상흔으로 신음하고 있슴을 볼 수 있나니 .....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자연을 위한 최선의 배려로 짜여지고 이루어지는 개발행위도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암세포를 증식시키고 심화시켜 가는 과정에 불과할 뿐이니 ...

 

지구와 후세를 위해서

나는 또 우리는 무엇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뱀사골과 또 진동계곡, 가야동계곡 조차도

그 비경이 손상되어 

어렴풋한 그리움 속에서만 존재할 날이 그 언제쯤 일까?

 

참으로 무섭고 착잡한 생각으로

뱀사골의 품을 배회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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