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억의 강가

그리운 사람

 

 

22433

 

날씨가 추워지니 어깨도 움추려들려 한다.

이럴 땐 아스라히 떠오르는 추억속으로의

정든 여행을 더듬어 봄도

가슴을 데우는 한 방법이 될성 싶다.

 

 

어느 날 그녀가 왔다.

전주 은행나무 골목의 교수님댁...

넝쿨장미가 긴 소슬대문간을 어지러히 덮으며 자태를 뽑낼 때

교수님 딸과 친구였던 그녀는

그림자 처럼 조용한 자태로 내 앞에   나타났다.

 

나 보다 3살 아래 였던 이들과 나는

청춘이며 학생들이라는 자유스런 분위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럽게 어울려

가슴속을 털어 놓고 얘기속으로 빠져들곤 했었다.

 

 

어느 휴일날 그녀가 나를

자기들 두 자매가 자취하고 있던 방으로 초대했다.

 

언니인 그녀는 처음 보는 고딩 동생에게 나를 인사 시키며

스스럼 없이 대해 주었고

우린 너무 커다라서 거실 처럼 느껴지는 방에서

다과를 겸한 식사를 하고 지내기도 했다.

 

그 후로도 나는

역시 커다란 마당 한 가운데 작두물과 빨래터 까지 갖추고

그 곳을 중심으로 비잉 둘러 가며

나무 마루와 큰 다다미 방들로 이어진

그녀의 자취방에 몇 번인가를 초대되어 갔었다.

 

 

그런 시간들이 흐른지 2년 쯤인가 되었을 때 였다.

 

내가 보석 같은 그녀의 눈물을 본 것은...

 

그것도 통학하는 학생들이 움직일 틈도 없이 꽉 들어차 있던

스쿨버스 안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같이 앉게 된 우리는

역시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었고

고학생으로 이곳 저곳 전전하며 지내다가

우연한 기회에 교수님댁으로 들어 와서

입주식 가정교사로 있었으나

신체검사 통보를 받지 못해서

이 번에 병역 신체검사 기피자가 되어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는

나의 얘기를 듣던 그녀가 갑자기 훌쩍이는 것이었다.

 

나는 당황했고

주위의 시선들이 집중되는 것이 부담스러워

몸둘 바를 몰랐으나

그녀는 그냥 하염없이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보았고 또 느꼈다.

세상의 어떤 성결한 눈물 보다 빛나고 맑은

그 눈물들의 의미를 ~ 

 

 

그후 나는 1년 반 만에 의가사 제대를 했다.

 

그 1년 반 동안에 일어났던 많은 일들을

나는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어느 겨울날 저녁

우린 전주 중심가의 어느 분위기 좋은 다방에 마주 앉았다.

난로위의 주전자에선 주둥이로 나오는 김이

가습기 처럼 끊임 없이 수증기를 뿜어 내고 있었고

감미로운 팝송은 대화의 분위기를 더욱 짙게 드리워 주고 있었다.

 

하얀 쇼울을 걸친 그녀의 팔에는

아담하고 예쁜 바구니가

태어 날 때 부터

그 자리에 그렇게 달려 있던 장식품 처럼 들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하얀 쇼울은

그녀의 새하얀 얼굴에 너무도 잘 어울려서

그 겨울의 모든 정취가 그녀에게서 나오는 것 같았다.

 

그녀가 그 예쁜 보석함 같은 바구니를 열었다.

 

아 ~

거기에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물건이 들어 있었다.

 

가지런한 정물 처럼 담긴

하얀 뜨게용 털실과 바늘들 ....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모습으로 앉아서

뜨게질을 했다.

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는 힘은

어디로 부터 나오는 것일까...

그 여리디 여린 그녀의 그 어디에서...

 

그후 그녀는

서울 S대 공과대학 교수로 전근해 가신 아버님을 따라서

서울 사당동 산마루에 있는 양지바른 자취방으로

모 기업 자동차 세일즈맨으로 있던 나를 초청했다.

그러면서 어렴풋이 자기의 결혼 얘기를 꺼냈던 것 같다.

나도 알 만한 그녀와 같은 상과대학 출신이었다.

 

또 다시 7~8년이 흐른 후

주유천하를 하던 나의 조촐한 결혼식장...

 

많은 하객들 사이에서

스치듯 은은한 미소가 나를 응시하고 있음이 감지 되었다.

돌아 본 순간

운행을 멈춘 행성 처럼 붙박힌 그녀의 눈동자.

 

그렇게 그녀와 나는

다시는 한 마디 말도 건네지 못하고

많은 세월의 강을 흘러 왔고

 

오늘 같이 추운 겨울날 밤이면

나는 추억속의 그 다방으로 달려 가

자꾸만 비워져 가는 그녀 바구니에

따뜻한 미소의 털실로 담겨지고 싶다.......

 

 

 

 

 

 

 

 

 

 

 

 

 

 

'추억의 강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뱀사골의 추억  (0) 2009.06.21
은행나무 골목의 추억....   (0) 2008.12.31
어느 추석 무렵... 대둔산 골짜기에서 ~  (0) 2007.09.24
당황스런 제안 ~  (0) 2007.07.02
젊은 날 ~  (0) 2007.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