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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서

내 집... 내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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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그믐날 밤에 집에 저나를 했다.

중등교사 임용고사에 1차 시험에 합격하고

2차 논문시험을 치루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딸애가 받았다.

*아빠. 낼 아침은 집에 와서 드세요.*

*글쎄, 해돋이를 보러 가얄 것 같은데 ... 다음에 같이 먹자.*

 

막상 그렇게 말은 해 놓았지만

기실 아침엔 늦잠을 자서

해돋이도 보러 나가지 못하고

느지막한 점심 때쯤 남한산성만 한바퀴 돌고 나니

집이 그립다.

 

그래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집에 저나를 하고

사무실에서 인터넷으로 약간의 업무를 보고 있는데

대학동창 임백호(술을 좋아하고 한량이라 해서 붙인 별명)가

나를 만나러 오겠단다.

 

녀석은 안전빵으로 잘 나가던 주택공사에서 퇴직하고

10여년 전에 부동산중개업에 뛰어 들었지만

별 다른 빛을 보지 못하고

어려운 생활을 꾸려가고 있는 친구이다.

 

특히나 세 딸중에 제일 이쁘고 촉망되었다는 막내딸이

신부전증을 앓아서 자기의 신장 한쪽을 이식해 주었으나

그 결과도 좋지 않아

하루 건너 한번씩 투석을 하러 병원에 다닌다니......

그런 말을 하는 그의 음성이 갑자기 미세한 파동을 일으키는 것을 감지하며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어쩜 그가 감추려는 슬픈 표정을 보지 않으려는 마음에서다.

 

친구는 그동안 안산쪽의 부동산에 명의를 걸어 놓고 출근해 왔으나

최근의 부동산 경기의 불황으로 차비도 나오지 않아서 그만 두고

지금은 집에서 그냥 소일하고 있으며

그의 부인 역시 천호동의 부동산 사무실에 나가고 있으나

최근에는 점포세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란다.

 

그런 와중에도

지난 11월에는 큰딸을 시집 보냈고

둘째 딸은 모 재벌그룹에 근무하는데

이번에 진급이 되어

아빠에게 한턱 쏘아서  잘 먹었다고 자랑이다.

 

- 그래 그런 재미라도 있어야 살맛이 나지 않겠니? -

 

여섯시에 만나자던 딸과의 약속시간은

이친구의 출현으로 삼십분 늦추었고

우리는 쐬주(참이슬) 두병과 삼겹살 2인분을 서둘러 먹어 치우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그는 보금자리로

나는 일년에 몇번 보는 가족(딸과 아내)을 만나러......

 

~~~~~~~~~~~~~~~~~~~~~~~~~~~~~~~~~~

 

 

대문을 두드리니

젤 먼저 반응을 하는 건

서너 달 전에 딸애가 데려다 놓은 강아지다.

 

마르티즈라는 종자인데 아주 곰살궂게 굴어서

상당히 친근감이 가는 애완견이다.

그 강아지는 데려다 놓자마자 병에 걸려서 금방 죽을 줄 알았는데

용케도 살아서 지금은 아주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

마치 한가족 처럼 지내고 있었다.

 

저녁식사는 외식을 할 건지 집에서 먹을건지

미리 의사를 타진해 놓았는데

요즘의 경제사정을 감안해서 인지

그냥 집에서 먹을 준비를 해 놓았다.

 

한그릇의 시레기국과 김치와 김과 생선찌개 한토막.

그것이 우리 식탁의 전부였다.

하기야 내가 생활비라고 건네주는 쥐꼬리만한 액수로는

이 정도의 식단이라도 황송히 생각해야 할 것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하는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돈이니까.

 

식사가 끝나자 아내는 말했다.

*우리 식사도 끝냈으니 내 키타 솜씨 좀 들을래요?*

나는 아연 속으로 놀랬으나

겉으론 짐짓 무덤덤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아니, 언제 무슨 키타를 배웠다고..... -

 

그러나 아내는 정말로 소파에 앉아 키타를 안고서

*예전에 같이 불렀던 '에델바이즈' 한곡 부르죠.* 한다.

그러자 딸애가 엄마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 앉으며

동조를 한다.

 

아내는 키타 반주를 하고 딸은 노래를 나직이 부르며

화답하는 모습을 정말 오랫만에 보았다.

나는 딸애가 초딩생이었을 때

지금 처럼 셋이서 같이 명곡집을 꺼내들고

노래를 부르던 때를 한 순간 회상하고 있었으나

오랫만에 본 나를 유난히 따르는 장군이(마르티즈 이름)를 안고

거실을 서성거렸다.

 

거실 벽에는 역시 아내가 손뜨게질로 수놓은

예쁜 그림들과 성모 마리아상이

소담한 액자속에서 새해 인사를 건네주고 있었다.

 

'Amazing Grace'와  그 외 몇곡의 성당 미사곡을 부르던 아내는

갑자기 보고 싶었던 TV프로가 생각난 듯

텔레비젼을 켰다.

 

아 !... 그동안 놀라운 변화가 있었나 보다.

딸애가 티비를 보려 한다든가, 컴퓨터를 켜면

전자파가 나오니 켜지 말라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던 그녀가....

 

정말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비록 1시간 반 동안 머무른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내 가정의 놀라운 변화에 한편으로 뿌듯함을 느끼며

차거운 겨울바람이 미풍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아 ~ 집에 왔다가 떠나 올 때 마다

시큰거리는 눈시울과 울먹이는 가슴을 여미어야만 했지만

오늘 따라 예전의 그런 분위기와는 상당히 다른 그 무엇을 느끼며

가볍고 뿌듯함으로 차거운 2009년의 한파가

이미 나에겐 적수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며

뒤에 남은 내 가족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미 나는 북극의 늑대가 되어

차거운 밤하늘을 향해 포효하자

나를 둘러 싸고 있던 얼음의 장막이 산산히 부서져

수 많은 꽃잎이 되어 분분히 춤을 추며 나를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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