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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서

지금의 추위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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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차다.

12월의 풍납토성을 짓밟고 비수처럼 날아 든 삭풍은

기어히 나의 황량한 가슴을 초토화 시켜버리고

승리의 나팔을 분다.

 

나는 천호사거리의 건널목에서 예쁘게 디자인 된

*삼성생명*의 건물을 힐끗 일견한다.

 

- 그래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오늘이 없는 내일이 어찌 존재하겠는가? -

그렇게 되뇌이며 허탈한 자위의 씁쓸한 미소를 띄워본다.

 

열흘전에는 삼성화재에서 화재보험과 손해보험 2건을 해약했고

오늘은 생명보험 3건을 해약하러 왔다.

1건은 내 아내의 건강성 보장보험이고

또 1건은 나의 보장성 보험

그리고 또 한 건은 지난 1월에 만기가 된 나의 보험을 해약하면서

딸애 앞으로 들어 둔 생명보험이다.

7년간을 적립해 온 보험이 만기가 되어서

그 적립금을 찾지 않으면

앞으로 10년간은 보장이 되는 유용한 보험이었지만

어려운 현실은 나의 미래를 위한 설계를 그냥 놓아 두지 않았다.

 

11개월간 든 보험료 180여만원은

겨우 1.6%인 3만여원만 중도해지금으로 돌려 받았다.

그래도 그거라도 받았으니 다행이다.

애시당초 내가 너무 장밋빛 설계를 세워놓은 탓일게다.

 

나는 나와 내 아내의 보험을 해지할 때는

그런데로 그저 허여로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딸애의 보험을 해지할 때는

갑자기 눈시울이 시큰거려 왔다.

 

내가 너에게 해 줄 수 있었던 것은

이것 뿐이었는데

참으로 미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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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안 .......

 

갑자기 무거운 침묵이랄까

참지 못할 훈증이랄까.

알지 못할 답답한 기운이 온 사무실 공간을 차지한다.

 

말을 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니, 말이 아니고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이지.

 

그러나 나는 애매하게

어떤 구속력이 없는 허퉁한 말투로 말을 꺼낸다.

 

- 저, 요즘 너무나 경기가 안좋으니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네요.

사무실 형편으로 봐서는 실장님을 좀 쉬라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이번에 따님이 대학교에도 들어가고

또 아저씨 하시는 일이 순조롭지 않으신 것 같기도 하고...

요즘 아저씨는 생활비를 좀 가져오시나요? -

 

나의 말이 끝나고 얼마 만큼의 침묵이 흐른 뒤

그녀가 말했다.

- 아뇨....

아직도 일이 잘 안풀리는 것 같아요.

곧 풀린다 풀린다 하면서도 아직도 그러고 있네요.... -

 

물론 그녀의 말을 직접 듣지 않아도

대략 돌아가는 그녀의 형편은 직감으로 알 수 있다.

 

나는 지금 이 말을 끄집어 내기 전

우선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혹독한 겨울의 한파를 피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경비를 줄이며

홀가분히 혼자서 감량 경영을 하여야 하리라고 다짐하며

그녀의 휴직을 강력히 권고하리라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나는 역시 강하지 못했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강하게 밀어 붙이려던 의지가 꺾이고

나의 마음의 강물은 극심한 추위와 맞서있는 그녀의 가정과

짚푸라기라도 잡으려 하는 가냘픈 그녀 가슴속의 희망이 절규하는 상황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으니....

 

그녀는 끊겨진 바이얼린 줄의 소리 만큼

걷잡을 수 없이 흐트러지고 여린 목소리로 말했다.

- 하지만 저는 사장님이 원하시는 데로 따를께요.

사장님이 말씀하세요. 쉬라면 쉬고 어디 다른데를 알아 보라면

그리 할께요. -

- 아니예요. 됐어요.

그럼 지금과 같은 조건으로 한 번 더 버텨 봅시다. -

나는 호기롭게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내가 어떤 기막힌 현실 타개책이 있어서가 아니다.

다만 내 저 밑바닥의 어떤 오기 같은

불합리하고 맹목적이고 저돌적인 제 2의 내가 용암 처럼 분출되어서

지나치게 계산적이고 소극적인 제 1의 나를 쓰러뜨린 때문이다.

 

내 오롯한 힘이여...

슬기와 빛을 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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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한식당 안.....

 

부동산의 불경기가 심화되어

행여 보탬이 될까 하여 시작한 돌파구....

 

그러나 요즘은 돌파구는 커녕

나에게 큰 애물단지가 될 처지다.

 

경기가 도무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 식사를 해결하기도 어렵고

또 갑자기 쌈직한 음식점 자리가 나왔기에

많지 않은 자본금을 투자하여 시작했지만

이지역이 뉴타운으로 지정되어서

자꾸 주위가 공동화가 되어 비워져 가니

자연히 경기가 위축되고 경영손실은 당연한 일....

게다가 요즘엔 금융위기 까지 겹치니

식당을 꾸려가기도 정말 힘겨운 현실이다.

 

그러나 가령 점포를 내 놓는다 하드래도

투입된 시설비만 하여도 수천만원인데

요즘 같으면 시설비가 있는 가게는 거들 떠도 보지 않는 시절이라

가게를 내놓기도 어려운 실정......

 

현재 이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은 2명...

한 사람은 남편이 생활비를 거의 주지 않으면서

자주 마시는 술버릇이 나빠서 거의 하루 건너 한 차례씩

갖가지 사고를 치거나 행패를 부리는 시쳇말로 *개고기*,

그리고 또 일하는 한 젊은 아낙은 몽골에서 온 이방인......

이들도 너무 처지가 딱하고 안타까워

손해를 보면서도 월급은 깎지도 못하고

또박 또박 쳐 주어야 하는 입장이니

힘겨운 상황이다.

 

요즘은 자동이체가 되어 빠져나가는 각종 요금이

연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

자주 통장잔고를 확인해 보는 게 일과중의 하나가 되었다.

마음 편히 있을 게재가 아니고 뭔지 자꾸 쫒기며 살고 있다.

 

그래도 나의 주위에는

나 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이 많이 있을 터인 즉

그들에게도 빨리 경제적 여유가 찾아 와서

편히 지낼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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