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하늘 아래 조롱박
9월의 첫 주가 지나간다.
매서웠던 더위가 풀리고
아침 저녁으론 제법 시원한 게
이제 살 맛이 나는 계절이 된 것 같다.
남한산성에서 바라 본 가을하늘
그러나 그 용광로와 같은 무더위야 말로
생명체들에게는 년중 최대의 축제이며
이 축제기간을 정점으로
동.식물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며 생의 갈무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즉 봄부터 이 무더위의 정점 까지를
열매를 키우는 기간,
그 이후를
열매에 감미와 견고함을 다져 넣는 기간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자주꿩의비름과 나비
기온의 변화는 곧 모든 생명체들에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채근하는
전조증상인 것이다.
동물들도 이 기간 까지는
새끼들을 키우는데 온 힘을 다 쏟는다.
그러나 이 기간이 지나면
서서히 월동준비를하며
생존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을은 모든 생명체들의 Turning Point가 된다.
많은 과일들은 이 시점이 되면 그 크기를 멈추고
감미와 밀도를 다져 넣는다.
그 크기를 결정하는 것이
태양과 강수량의 역할 이었다면
감미를 다져 넣는 것은
아무래도 풀벌레들의 애잔한 선률과
별들과 달빛이 어린 이슬과 찬 서리,
그리고 서걱이며 불어대는 갈바람의 손끝일 것이다.
개쑥부쟁이
이 가을
과일들은 가슴을 에일듯한 애잔한 풀벌레들의 선률로
제 몸에 문신을 하며 꿈에 젖는다.
과일들이 간직한 형용할 수 없이 감미로운 맛은
이렇게 갖가지 곤충들이 들려주는
자연의 교향악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채워지는 것이다.
자주꿩의비름
이 자연의 어느 한 가지도 간과하지 말자.
어느 한 가지도 업수이 여기지 말자.
그것은 곧 아무리 작은 미물이라도
그것이 곧 우리 자신과 너무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어서
거의 우리 자신과 그것들과 구별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세상 생명체들의 種이 하루에도 수십개씩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데도
우리는 눈 한 번 깜짝이지 않는다.
우리는 인류역사상 가장 빛나는 문명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가장 어두운 암흑의 시대에 살고 있기도 하다.
나의 몸뚱이들이 하나, 둘 해체되어 가는데도
전혀 느끼지도 못하고 대비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겐베리아
이 가을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곤충이 무슨 과일에 맛을 다져 넣느냐고...
그러나 동물들도 식물을 통해서 나온 유기체이며
식물들의 광합성이나 영양소의 흡수과정은
동물들에게 있어서도 모양세만 바꿔진채로 전수되어 진 것들이다.
사람들이 아름다운 음악이나 풍경이나
마음의 양식이 되는 문구에 감명을 받아 인성이 맑고 고와지듯이
열매들도 안정된 소리, 분위기, 일교차의 적정수준에 따라서
그 맛이 결정되는 것이다.
마천동의 낡은 지붕과 부겐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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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여늬 해 보다 열매가 풍성히 열린 것 같다.
숲길을 거닐면 도토리와 상수리 열매가 떨어지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심심찮게 들려오고
길섶에도 그 열매들이 너무 많이 떨어져
발길에 밟히며 부스러지기도 한다.
옛 추억을 더듬는 아줌들이
숲속과 등산로에 엎디어 떨어진 열매를 줍느라고
허리가 아픈줄도 모르나 보다.
붉은물봉선
동네 모퉁이나 빈터에는
어느 새 포대자루나 돗자리 위에서
뙤약볕 아래 말려지는 도토리, 상수리들이 넘쳐나고 있다.
거의가 묵을 쑤기 위해서 가루로 변할 열매들 ~
벌써 입속에서는 떨떠름하면서도 고소한
도토리묵의 향내가 진동한다.
이 가을
나도 잘 쑨 도토리묵 한 접시에
잘 빚은 동동주 한 잔으로 세월을 낚아나 볼꺼나......^^*
도토리를 큰 비닐 가방으로 가득 주은 아짐들이
남한산성 서문에서 내려오는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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