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가뭄끝에 단비가 내린다.
목마른 대지가 은총의 단비속에서
짙푸른 머릿단을 흔들며 어깨춤을 추고 있다.
나는 그동안 채양에 덮힌 그늘에서만 키우던 난초화분들을
이 단비의 세례를 받도록
노천의 베란다로 내 놓으며
아직도 내 가게 한켠을 지키며
해마다 이쁘고 청순한 미소를 보내주는
한 조그맣고 오래된 친구
춘란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춘란이 나에게 시집 온지는
10년도 훨씬 넘었다.
내 이웃에 살던
전남 해안가 고흥반도가 고향인
손위의 동네 선배로 부터 선물로 받은 것이다.
고흥반도나 변산반도는
춘란이 많이 자라는 고장들이다.
어느 봄날이었다.
그 선배가 나에게 이 시골 해안가 춘란을 데리고 온 것은....
이 춘란은 선배의 손에
다른 동료들과 함께 무더기로 뽑혀져 왔었다.
화장기가 조금도 없는 시골 처녀 같은 모습으로...
뿌리는 자기가 자랐던
파도소리가 베인 붉은 황토에 그대로 쌓인 채로...
머릿채는 난발했지만 그 빛만은
그 누구도, 그 어떤 힘으로도 억누를 수 없는
강한 의지가 살아 있는 검푸른 빛을 띄고 있었다.
그러던 그도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퇴색되기는 했지만
이젠 체념한 듯
나의 좁은 가게라는 공간에서 잘도 버텨내고 있다.
그동안 나의 가게 한켠에서
처녀의 댕기처럼 치렁치렁한 꽃대를 자랑하며
많은 이에게 청초한 미소를 선사해 왔었고
또 한편으론 자기의 분신을
그들에게 나눠주면서 까지
15~6년을 말없이 내 곁을 지켜 준 고마운 친구...
춘란아!
미안하다.
너를 이 은총의 빗속에 내 놓지 못하는 내가 나도 밉다.
그러나 어쩌겠니...
은총의 빗속이지만 네가 이 은총안에 들어서는 순간
너의 고운 미소 ...꽃잎은 힘없이 지고 말걸...
아름답고 고맙지만 가여운 친구...
그러나 세상의 모든 영화를
다 내것으로 만들 수는 없는거 아니겠니.
이 단비가 내리는 날
문득 너의 모습이 쓸쓸해 보여서
그동안의 너와의 동거를 새삼 돌이켜 보는 것이란다.
앞으로도 너의 고마운 미소를 잊지 않고
나도 너를 잘 보살펴주고 싶단다...
지난 날들 처럼 부디 건강하고 예쁘게 그 자리를 지켜다오...
그런데 너를 안고 온 그 동네 선배님이 아프단다.
수년을 중풍으로 앓고 계시니
내 마음도 편치 않아...
나도 너의 미소를 대할 때 마다
그 선배의 쾌유를 바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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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은총의 빗속에서
생동하는 만물들에게 생명의 고귀한 메시지가
넘쳐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