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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서

오래 된 친구... 春蘭 ~

 

25341

오랜 가뭄끝에 단비가 내린다.

목마른 대지가 은총의 단비속에서

짙푸른 머릿단을 흔들며 어깨춤을 추고 있다.

 

나는 그동안 채양에 덮힌 그늘에서만 키우던 난초화분들을

이 단비의 세례를 받도록

노천의 베란다로 내 놓으며

아직도 내 가게 한켠을 지키며

해마다 이쁘고 청순한 미소를 보내주는

한 조그맣고 오래된 친구

춘란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춘란이 나에게 시집 온지는

10년도 훨씬 넘었다.

 

내 이웃에 살던

전남 해안가 고흥반도가 고향인

손위의 동네 선배로 부터 선물로 받은 것이다.

 

고흥반도나 변산반도는

춘란이 많이 자라는 고장들이다.

 

어느 봄날이었다.

그 선배가 나에게 이 시골 해안가 춘란을 데리고 온 것은....

 

 

 이 춘란은 선배의 손에

다른 동료들과 함께 무더기로 뽑혀져 왔었다.

화장기가 조금도 없는 시골 처녀 같은 모습으로...

 

뿌리는 자기가 자랐던

파도소리가 베인 붉은 황토에 그대로 쌓인 채로...

 

머릿채는 난발했지만 그 빛만은

그 누구도, 그 어떤 힘으로도 억누를 수 없는

강한 의지가 살아 있는 검푸른 빛을 띄고 있었다.

 

 그러던 그도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퇴색되기는 했지만

이젠 체념한 듯

나의 좁은 가게라는 공간에서 잘도 버텨내고 있다.

 

 

 그동안 나의 가게 한켠에서

처녀의 댕기처럼 치렁치렁한 꽃대를 자랑하며

많은 이에게 청초한 미소를 선사해 왔었고

또 한편으론 자기의 분신을

그들에게 나눠주면서 까지

15~6년을 말없이 내 곁을 지켜 준 고마운 친구...

 

 

 춘란아!

미안하다.

너를 이 은총의 빗속에 내 놓지 못하는 내가 나도 밉다.

 

그러나 어쩌겠니...

은총의 빗속이지만 네가 이 은총안에 들어서는 순간

너의 고운 미소 ...꽃잎은 힘없이 지고 말걸...

 

아름답고 고맙지만 가여운 친구...

그러나 세상의 모든 영화를

다 내것으로 만들 수는 없는거 아니겠니.

 

이 단비가 내리는 날

문득 너의 모습이 쓸쓸해 보여서

그동안의 너와의 동거를 새삼 돌이켜 보는 것이란다.

 

앞으로도 너의 고마운 미소를 잊지 않고

나도 너를 잘 보살펴주고 싶단다...

지난 날들 처럼 부디 건강하고 예쁘게 그 자리를 지켜다오...

 

 그런데 너를 안고 온 그 동네 선배님이 아프단다.

수년을 중풍으로 앓고 계시니

내 마음도 편치 않아...

 

나도 너의 미소를 대할 때 마다

그 선배의 쾌유를 바래야지...

~~~~~~~~~~~~~~~~~~~~~~~~~~~~~~

이 아침 은총의 빗속에서

생동하는 만물들에게 생명의 고귀한 메시지가

넘쳐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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