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은 어떤 큰일에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일에서 부터
시작되는 일 인 것 같다.
그날도 나는 봄볕과 들꽃들의 유혹에 못이겨
내 애장품인 디카를 들고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싱그러운 신록의 숲에서 연주하는
산새들의 교향악에 푹 빠지고
들꽃들의 미소에 나도 행복한 가슴으로 화답하면서
요즘들어 한창 고운 빛을 띄며 만개해 있는
애기나리의 고개숙인 예쁜 모습을 담느라고 정신이 팔렸다.
그렇게 여유자적하던 나의 뇌리에
- 아차! -하고 순간적인 실수가 스치고 지나간 것은
내 등산로의 꼭대기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내 모자가 없어진 것이다.
집에서 출발할 때는 그리 덥다고 느끼지 않지만
막상 산을 오르다 보면 몸에 열기가 일어 거의 땀을 흘리는 터여서
이럴 때는 항상 준비해 가지고 다니는 손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다니는데
오늘도 예외는 아니어서
도중에 벗어서 들고 다니던 모자를
어디에선가 들꽃 사진을 찍다가 그 자리에 그대로 놓고 온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가 딱히 생각키우지 않았다.
그래도 그냥 갈 수가 없어서
모자를 찾으려고 약간 지피는 장소로 급히 내려 왔다.
그러나 그 곳에도 없었다.
그래서 맥이 빠진 나는
제2의 장소로 여겨지는 중턱으로 다시 올라 가 볼까 하다가
그곳에도 확실하게 있다는 보장이 없는 터라
그냥 서운한 마음과
행여 누군가가 주워서 눈에 잘 띄는 근처에 놓았을 지도 모르니
내일 다시 찾아 보자는 심산으로 하산을 했다.
다음날 나는 다시 내가 걸었던 길을 따라 산을 올라갔다.
내가 제2의 장소에 다다라서
애기나리가 무리지어 인사를 하는 작은 융단 가운데 소나무 위에 걸려서
나를 향해 별 같은 시선을 보내며 미소를 보내는 내 모자를 보았을 때
나는 참으로 기뻐서 짙은 향기를 맘껏 발산했다.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어쩜 진작 버렸을 지도 모를 내 별달린 모자...
구입한 지가 10년은 되었슴직한 내 이 낡은 모자는
언제 부터인가 나의 또 하나의 애장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 이마위에서 빛나는 별이 되어
항상 나를 지켜줄 것만 같은 이 모자를 주워
소나무에 걸어 두신 고마운 분에게도
내 모자의 별 보다도 더 밝고 맑은 별을 선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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