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파일에 이어
올 초파일 다시 무박으로
7암자 순례길을 찾습니다.
지난해에 빼 놓았던
도솔암을 둘러 보고 싶어서죠.
밤 11시 30분 강남 신사역에서
버스에 오릅니다.
새벽 4시30분경
함양군 마천면 음정부락에 도착합니다.
하정, 양정, 음정부락을 합쳐 삼정리라 일컫고
지리적으로는 벽소령과 형제봉 덕평봉에서 발원한 비린내골,
별바위등과 영원산에서 발원한 영원사골,
그리고 삼정산 일원에서 발원한 상무지골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이 삼정리이기에
지리산 등정에 있어서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는 곳이기도 하군요.
입구에는 <백두대간벽소령입구>라는 표지석이
어둠속에서 높히 솟구쳐
우리 일행을 굽어 보고 있어요.
초행길은 순탄한 임도로 이어져
한 동안은 힘들지 않은 산행이네요.
캄캄한 어둠속 헤드랜턴 불빛속에
13-05-01이란 급경사 관리번호가
이곳이 도솔암으로 오르는
비탐방로임을 알려줍니다.
거의 쉬지 않고
40여분 동안을 올라 온 임도 ....
왼편으론 몇길이나 될지 알 수 없는 낭떨어지로 느껴지고,
우리는 바로 오른편 통행금지 표지판을 비켜
가파른 능선길을 따라 오릅니다.
년중 초파일인 오늘 하루만은
출입이 허용된다는 비탐방로 ....
그러나 그런 나의 정보는
잘 못된 소식통에 의한 것인가 봐요.
이 출입통제 표지판 근처에 도착하자 마자
어둠속 어디에선가
우리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던 듯
비탐방로를 이용하지 말라는 경고음이
스피커를 통해 계속 들려 오기 시작하네요.
나는 큰 죄인이나 된 듯 무거운 심정으로
조릿대가 듬성 듬성한 능선 안부에
숨이 차 올라 서니
사위가 밝아 옵니다.
어디서 온 것일까?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우리 팀 보다 먼저 안부를 점하고
왁자지껄 요란한 휴식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능선 안부에서 조금 오르다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전혀 없는 너덜길을 더듬어
오른편 능선으로 이동합니다.
혼자로서는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는
산행길 ....
도솔암에 이르는 길은
이토록 지난한 길이군요.
그러니 수행처로서는
다시 없이 좋은 안성맞춤 입지인 셈입니다.
도솔암에 거의 당도하나 싶었을 즈음
이윽고 잎새를 아직 피우지 않은 잡목들 사이에서
아침해가 찬란히 떠 오르고 있네요.
오!~~
지구촌 모든 생명체들의 근원인
태양이여,
신의 심장이여!~~
드디어 긴 여정의 끝에 당도했어요.
이곳에서 수행을 하기 위해 찾아 오는 스님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험난하고 가파른 너덜길은 물론이고
갖가지 생필품의 조달 문제에 이르기 까지
이곳에서의 수행은
정말 고난의 연속일 것 같아요.
자기와의 처절한 싸움이 녹녹치 않을 것 같군요.
주위가 온통 가파른 너덜지대인데도
이렇게 상당한 평지가 숨겨져 있어
수행자들에겐 다행한 일이군요........... ㅎ
저멀리 백무동 산 언저리에서
이글거리는 태양!~~~
그리고
많은 수행자들의 궤적을 따라 걸으며
인생길에서의 뭔가를 느껴 봤을
오늘의 산보자들!~~~
그대들 모두는
이곳의 잠간 쉼터에서
그 수행자들 못지 않은 감회와 희열을 느꼈을 터,
이름 모를 님들
모두 성불하시기를!~~~~~~
산중 생활에 필요한 가재도구들이
자기들 쓰일 날을 기다리고 .............
만고풍상을 다 겪어
빛바랜 이 건물은
이젠 해탈의 경지에선 노승 처럼
의젓하고 당당하면서도
어딘가 처연해 보이기도 하다.
모두가
세월의 자상한 내공으로 빚어진
작품들이어니!~~~~
이 둥근 돌 구슬 모형과 연못 모형은
우주와 태양 또는 지구를 형상화한 조각품이겠고
연못 모형도 바다, 또는 물을 형상화한 것이리라.
곧 태양의 빛과 물을 대비시켜
우주의 원리와 생명의 기원을 표현하고픈
조각자의 의도가 엿보이고 있군요.
도솔암과는 10여분 정도의 해후로 갈음하고
이제 영원사를 향해 걸음을 놓습니다.
지난 해 초파일에 들렸던 영원사 ....
영원사로 내려가는 계곡길은
새벽에 올라 왔던 비탐방길보다는
훨 잘 닦여져 있네요.....
평소에도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던 듯
그렇게 뚜렷한 산행의 흔적이 있어요.
도솔암에서 영원사로 오르는 임도 까지는
거의 40여분 정도가 소요되는
내리막길이네요.
내리막길 내내
왼편에선 영원산 삼형제가
봉깃하게 머리를 내밀고
우리의 산행을 응원하고 있는 듯해요..
물소리가 제법 당당하게 느껴지는
영원사 계곡 징검바위 길을 넘어 드니
이제 지난해 초파일에
음정에서 영원사로 오를 때의 예의 그 임도와 만나네요.
여기서 영원사 까지는 불과 500m남짓 .....
남녘의 들녘에서 가끔 조우하는 그대 ....
창녕의 화왕산, 해남의 달마산과 두륜산, 그리고 이곳에서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연속 만나게되네 .
그대 보랏빛 자태 어딘가에서
나를 꿈꾸게 만드는 향기가 은은히 흘러 나오는 것 같아
나는 오늘도 은근히 그대의 출연을 기대하고 있었다오 .... ㅎ
지난해 초파일엔
이 언덕을 가득 메운 넓은 머위잎들이
푸른 파도를 연상시켰었는데,
오늘은 그냥 별나지 않은 잡초들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합니다.
생각만 해도
내 맘속에 꿈의 나래가 펼쳐지는 금창초를
이리도 숱하게 볼 수 있다니...
오늘은 정말 횡재한 날이군요.
보통의 사찰에서 보이는
대웅전(大雄殿)이라는 명칭 대신
두류선림(頭流禪林)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걸 보니
해인사의 말사로 알려진 이 곳은
선(禪)을 위주로 하는 사찰인가 봐요.
이 능선은 도솔암 윗편
삼각고지(명선봉과 형제봉 중간)에서
별바위등(1400m)을 거쳐서
삼정리로 떨어지는 산줄기네요.
*, 삼각고지: 명선봉과 형제봉 중간지점으로
해발 1480m이며, 남원. 함양. 하동의 분기점입니다.
이렇게 높은 능선에 까지 등산로을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네요.
하기사, 이렇게 하면 토사 방지등 산림보호와
산객들 안전을 도모하는 등
좋은 효과를 볼 수 있겠어요.
제 철이 지난 얼레지가
곧 해체될 측은한 모습으로
내 길가에 장승 처럼 서 있어요.
모든 생명체들은 이처럼
주어진 제 시간이 지나면
미소도, 모양새도 흐트러져
자기 몸을 온전히 추스릴 힘을 잃어 버리게 되나 봐요.
그래도 이 아이는 아직은
곱다란 자태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있네요.
이 정도를 유지하는 데도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을 것 같아요.
능선길을 가로 막고 있는 거암위에
거송 한그루가 떡 버티고 앉아 길을 내어주지 않네요.
여기서 100여m만 오르면 오를 수 있는 삼정산 정상---
그러나 작년에는 없던 통행금지 푯말을
올핸 어느 새 야무지개 설치해 놓았군요.... ㅎ
삼정산 갈림길에서 2분여 거리에 있는
상무주암에 많은 인파가 몰려 있네요.
작년엔 여 보살 한 분이 사진 촬영도 못하게하고
쌀쌀 맞기가 그지 없었는데,
오늘은 친절하게도 마당 평상에 차 주전자를 가져다 놓고
한잔에 2000원씩 판매 까지 하네요.
그리고 지난 해엔 보이지 않던
나이 지긋한 노승 한 분이
주위 산객들과 여유스럽게 담소를 나누고,
아직 30대로 보이는 젊은 남자 승려가
자주 비워지는 차 주전자를 채워 놓으며
흐뭇한 표정입니다.
그러나 원래 이곳의 관례상
외부에 이곳의 모습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아
오늘은 이곳 사진을 담지 않기로 했어요...... ㅠㅠ
하지만 나도 목이 마르고
이 암자의 그윽한 차 한 잔의 유혹도 뿌리치지 못하여
한잔을 마셔 봅니다.
아무도 거처하지 않는 암자라는 뜻의 무주암(無住庵)...
그러나 그 본래의 뜻은
사람의 존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자세를 가리키는 것이리니....
바람 같은 사람들의 흔적,
그리고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구별이 없고
비워짐과 채워짐이 궁극적으로는 같은 것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상무주암 동편 울타리 모서리 끝에는
회룡고조(回龍顧祖)의 명당자리가 있고
그 사거리에서 남쪽 상무지골로 내려가면
양정마을로 되내려가게 되고
왼편으로 직진하면 문수암을 거쳐
삼불사, 약수암, 실상사에 이르게됩니다......
*, 회룡고조: 풍수지리에서, 산의 지맥이 삥 돌아서
본산과 서로 마주하고 있는 모양새.
상무주에서 왼편으로 돌아
또 한 능선을 돌아 드니
거대한 암봉이 지붕 처럼 드리운 천연의 요새 옆에
작달막한 암자 하나가 있으니
이곳이 곧 문수암이네요.
문수암 저 건너엔
남원시 인월면의 백운산이 의젓한 자태로 인사를 건네고,
그 아래로는 오늘 산행의 종착지, 실상사가 있겠죠?
이 거대한 바위 지붕 아래서는
백여명 정도는 거뜬히 눈비를 피할 수 있는 장소인데,
이렇게 암반수도 넉넉히 흘러 나와
비상시 대피처 로서는
아주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 있네요.
왼편으로 돌아서 100m거리에 삼불사가 있는데,
이곳에서 한잠 청하면서
쉬어 가면 좋을 듯한 귀여운 암봉이네요.
이 이정표에서 알 수 있드시
삼불사에서 약수암 까지는 2.4km로서
상당히 멀고 지루한 산행이었네요.
특별한 볼거리가 없어서
그 지루함이 더 컷던 것 같아요.
지난 해 초파일에는 상당히 시끌벅적했던 삼불사 ...
그러나 올 핸 아주 조용하네요.
암자 마다 그해 그해 분위기가 다르군요.... ㅎ
지난 해에 아주 조용했던 상무주가
올 핸 상당히 분주하게 돌아 가는 것도 그렇구요.
항상 이맘 때면
남한산성 주변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친숙한 꽃인데,
왠일인지 요 몇해 동안은 제 눈길에 뜸했었네요.
방갑고 친근미가 넘치는 그대 .......
요기서 보니 더욱 방가워요.
이곳은 실상사로 향하는 마지막 암자 ......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 어떤 행로도 쉬이 찾지 못하도록
미로를 만들어 놓은 듯 ....
아무리 퍼즐을 맞춰가며 길을 찾아 봐도
도저히 뚫리지 않는 미로....
하여 결국엔 어느 낯선 민가마을로 내려가서
동네 아낙이 운전하는 트럭을 빌려 타고
실상사 입구의 해탈교가 있는 버스 주차장으로 왔어요.
간밤에 잠도 못자고 많이 헤매였더니
거의 탈진상태가 되어 인근 어느 메밀 국수집으로 향합니다.
내 청년시절 전주의 한 음식점에서 맛보았던
그 맛,
비록 그 때 처럼 대나무 채반에 소바를 받쳐 놓고
커단 사발에 다진 무, 겨자와 지금은 알수 없는
갖은 양념을 넣어 칼큼하면서도 야릇한 그 맛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런데로 옛 추억을 떠올리며
맥주 한잔을 곁들인 후식에 넘 기분이 엎되었네요...... ㅎ
그리고 날머리 주차장에서
수년간 늘푸른산악회 선두대장으로
나와도 오랜 동안 산행에서 동고동락을 함께했던
둥지대장님을 만나게 되어 너무 방가웠어요.
오늘은 반더룽산악회의 총대장님으로
회원들을 인솔하고 오늘 나와 같은 코스로 산행을 했는데
산행 날머리에 와서야 만나게 되었군요.
살아 가면서
우리는 항상 어떤 그리움 같은 걸
마음 주머니에 갈무리하고 다닌다.
그 것은 어느 때는
이상향의 형태로 발현되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애착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지식백과에서는 도솔천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 미륵보살이 머무는 내원과
천인들이 즐거움을 누리는 외원으로 구성된
천상의 정토를 가리키는 이상세계. 지족천 >
오늘 천상의 정토를 돌아 보고 온 나....
그러나 역시
그 정토는
내 마음의 행로에 달려 있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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