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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제주도 - 둘째날 -한라산

 

 

29038

 

오늘 한라산 등정이 있는 날,

 

새벽 부터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커튼을 열어 보기를 서너 차례...

 

그러나 창 밖의 비는 언제 그칠지

그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쩜 이 빗속을

하루 종일 걸어 올라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지만

 

-아냐 고도가 200미터 높아 질 수록

온도는 1도씩 내려 가니,

아마 중턱 이상 올라 가면 비가 눈으로 바뀔거야.

그럼 오늘 산행은 어쩜 환상일지도 몰라.-라고 스스로 자위하며

성판악행 버스에 오릅니다.

 

성판악 아래 상점에서

1회용 판쵸우의를 구입하여 비와 진눈개비를 가립니다.

 

하지만 30~40분 쯤 지난 후 부터는

비와 진눈개비가 완전 눈으로 바뀌어

환상의 세상을 펼쳐 보여줍니다.

 

한라산 선녀님,

감사드려요!~~

 

어디 까지 오르는 모노레일 일까?

같이 가자 눈을 씽끗하며 윙크를 보내는 모노레일....

 

 

 

벌써 1500m나 올라 왔으니

힘을 내라며

눈 모자를 뒤집어 쓰고 응원을 보내는 선녀님!~~

 

이제 눈도 그치고 하늘은 맑아

사방의 경관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 자 이제 부터 당신께 저의 본 얼굴을 보여 드릴께요.

제가 조금 전 까지는 넘 심술을 부렸었나요?

 

하지만 그건 모두 오늘 당신께 보여 드리려는

선물을 준비하는 과정이었어요.

저에게 서운하셨다면 미안해요.

이젠 그 서운함을 푸세요.-

 

나는 선녀님께 전혀 그런 마음이 없었노라 이르고

한라산의 풍광을 가슴에 안습니다.

 

한라산의 비경은

1500미터 ~ 1800미터 사이에 결집되어 있는 것 같아요.

 

날씨가 맑아지니

고사목들이 하나 둘씩

하얀 백설 이불을 털고 일어 나

눈을 부비며 하품을 하곤 인사를 건넵니다.

 

 

비록 이제 겨우 잠에서 깨어나긴 했어도

그 기지개를 켜는 모습 조차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습니다.

 

오 아름다운 한라산 선녀님이시여!~~~

 

백의를 걸친

구상나무 숲길을 걸어 갑니다.

 

죽은 영혼은 그 기상 그대로 아름답고,

살아서 온기를 느끼게하는

살아 있는 구상나무는 또 그 나름

늠름함으로 아름답습니다.

 

- 킬리만자로님!

그대가 오기를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방가워요. -

 

- 저도 너무 보고 싶었어요.

한라산 선녀님!~

이렇게 뵙게되어 너무 행복해요. -

 

나는 너무 감격스러워

선녀님을 포옹하고 풀어줄 줄을 몰랐습니다.

 

선녀님은 자기의 정원으로 나를 안내하기 시작했고,

나는 다소곳히 그녀의 옷자락 뒤를 따르며

꿈인 듯 생시인 듯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가까이서

 

그리고

또 멀리에서도

 

그리고 또

영육간에라도

 

늘 하나가 되고픈

나의 선녀님이시여!~~

 

자연의 일 부분이며

대자연과 우주의 속살이여!~~

 

이곳에 영과 혼을 묻었다가

다시 또 되살아나

이곳을 지키려고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님이시여!

 

 

사랑합니다.

당신의 영과 혼을!~~

 

기억하시나요?

나의 선녀님이시여!

 

40여년전...

제가 당신을 처음 만나던 그날에도

당신은 이렇게 백의를 걸치고

저를 맞이했었지요.

 

그때는 비록

오르는 길이 이길이 아니라

어리목이었지만,

 

그리고 그 시기가 때 마침 폭설로 인해

한라산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지만

 

저는 출입구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며 틈을 노리다가

단속이 조금 느슨해진 사이

잽싸게 그 통제선을 넘어

그리던 당신의 품속으로 뛰어 들어 가 안겼었네요..... ㅎ

 

그때도 아마 제가 잘은 모르지만

당신이 그런 기회를 만들어 주신 거라

믿고 싶어요.

 

나의 한라산 선녀님이시여!~~~~

 

 

정강이를 덮은 눈길을

앞서 간 몇 사람의 발자욱을 따라 

여유자적하게 오르는데,

 

눈속에 반쯤 파묻혀

아침 햇살을 사려 담는 사슴의 뿔도 보였고,

 

눈속의 작은 생수터에서

물을 먹고 있던 노루가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고 놀라서

자기 무릎을 덮는 눈을 헤치며 도망치던 모습도 선한데...

 

그 시간은

지금은 어디쯤 날아가서

나를 굽어 보고 있을까요?

 

당신과의 그 첫 만남 이후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후에

당신을 다시 만나기는 했지만

 

저에겐 그 첫 만남이

꿈인 듯 생시인 듯

더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어요.

 

첫 만남의 기억은

저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생생하게 각인되나 봐요.

 

오늘

나는 당신을 더욱 또렷히 담아 가고 싶어요.

 

당신의 모습이 행여

세월이 흐를수록 얇아져 가는

내 기억속에서 지워질세라

 

내가 아끼고 아끼는

가장 값비싼

비단 보자기에 싸서

 

내 가슴

가장 깊지만

가장 햇볕이 잘 들고

제 손이 쉬이 닿는 곳에 두고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도록

그렇게 간직해 두렵니다.

 

물론 저는 제 인생의 끝이 어디라고

장담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그 끝이 비록 내일이라 해도

당신을 내 가슴

제일 깊고 오묘한 곳에 모셔 두렵니다.

 

만일 한라산산신령님이 계시다면

그님께도 감사를 드려요.

 

오늘 저에게 이토록 귀한 선물을 준비해 주신 님들이니

제가 얼마 만큼 큰 감사의 마음을 드려야

그에 합당할까요?

 

말씀 해 주세요.

당신의 속 마음을!~~

 

이제 숲의 향연이 끝난 자리 ...

 

멀리 광활한 한라산의 삼림이

눈의 바다를 연출하고 있어요.

 

어느 새 노옹이 된 나그네...

 

그러나 이 노옹을 방가히 맞아 주신

한라산 선녀님산신령님 깊히 감사드려요..... ㅎ

 

 

이제 정상에 가까워지니

키큰 나무들이 듬성 듬성하네요...

 

 

이제 정상 백록담 까지 50미터 남았네요.

 

 

한라산 정상 이정표

 

하얀 사슴이 물을 마시며 노닐던 백록담...

 

내가 처음 찾아 왔을 때는

푸른 물이 깊은 곳엔 상당히 차 있었는데,

십 수년이 지난 후에는 약1m 정도로

거의 매말라 있었네요.

 

그리고 오늘은 정상부에

눈과 얼음 조각들이 뒤섞인 폭풍이 몰아쳐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어

백록담쪽을 내려다 볼 수 조차 없었네요.

 

하지만 오늘 보지 못한

백록담의 얼굴

 

다시 와서

더 오붓한 자리를 마련하자는

선녀님,

당신의 깊은 뜻임을 제가 알아요.

 

그래요,

어느 꽃피고 따스한 날이 찾아 오면

그때 당신을 만나러 올께요.

 

불러주세요.

나의 선녀님,

기다리고 있겠어요.

 

 

 

 

유난히도 폭설이 많이 내려

제주도 항공편이 결항이 속출하고,

한라산 등정이 통제되기 일쑤인 요즘

 

저희에게 한라산 등정의 행운을 안겨주신

큰님, 당신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정상에서 오래 체류할 수가 없어

곧 바로 관음사를 향하여 출발합니다.

 

관음사 쪽이 북쪽이라

하산길은 등정길 보다 더 깊은 눈으로 덮혀 있어요.

 

 

 

하산길에서도

최선을 다 하는 

내 선녀님의 춤사위가

내 발걸음을 더디게해요.

 

한라산에서 평생 동안 수련한 춤사위...

 

제주 토박이 구상나무의 아름다운 모습

그 어느 춤사위로 대신할 수 있을까요?

 

 

 

 

 

 

 

 

 

 

 

 

 

 

 

 

 

 

 

 

 

 

 

 

 

 

삼각봉

 

 

탐라계곡

 

제주의 겨울 밤거리

거친 바닷바람이 시가지를 질주합니다.

 

어린 새새끼 처럼 움추러든

나그네의 여수(旅愁)를 아는 듯 모르는 듯

 

무심한 제주의 바람에게 뭐라 전할 말이 있었는데,

미처 할 말을 못하고 돌아 서는

내 여린 영혼이여!~~~~

 

명멸하는 가로수 불빛 사이로

분주한 차량들 헤드라이트만 빛의 파도 처럼 출렁거리는데,

 

어디로 향해야 할 지

만감이 교차하는 이 제주의 밤거리에서

 

곧추서 치달리려는 감정의 정수리에 화살을 날려

하나, 둘씩 모조리 쓰러뜨리고

 

군졸을 모조리 잃고도

승리한 장군 처럼 

개선문으로 들어서려

 

모순된 내 마음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