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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스크랩] 모악산과 금산사

볼륨Piano Sonata No. 17 in D minor Op. 31 No. 2 - Ludwig van Beethoven음악을 들으려면원본보기를 클릭해주세요.

 

 

기지개를 펴는 봄의 손을 잡고

봄나들이를 꿈꾸어 봅니다.

 

마침 내 유년기와 청년기의 추억이 어린

전주김제평야를 굽어보는

모악산, 그리고 그의 품에 안긴 아늑한 금산사

내 앞으로 성큼 다가와

이 봄을 안내하겠다고 나섭니다.

 

산행 들머리는

완주군 구이면 구이저수지에서

대원사를 향해 오르는 길을 택합니다.

 

청년시절엔 거의 매달 한 번씩 올랐었지만

고향을 떠난 후론 거의 20여년이 훌쩍 지나가 버린 모악산 산행....

그저 모든 정경들이 방가움과 다정스러움으로 다가 옵니다.

 

<산자고:봄처녀>

 

총 50여종의 튜립종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유일한 튜립종인 산자고...

 

우아한 여섯개의 꽃잎 사이로

조신스런 미소를 보내줍니다.

 

매화꽃과 함께 인증샷을 남기려고

서로가 교대해 주는 동심속에

정겨움과 잔잔한 사랑이 어려 있어요.

 

<갈마가지나무꽃>

 

열흘 전에 남한산성에서 담아온

올괴불나무꽃과 상당히 닮아 있는 갈마가지나무꽃.

 

내가 직접 담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네요.

 

방가운 님!~~~~

 

<개별꽃:귀여움>

 

이제 갓 피어난 꽃봉오리가

봄빛에 눈이 부시어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군요.

 

<광대나물:코딱지나물>

 

색상은 진홍색이어서 열정적으로 보이지만

아직도 조석으로 추위속에서 떨고 있는 가녀린 님!....

 

여늬 화사한 꽃들을 앞질러 따스한 봄을 맞으렸더니

아침 저녁 켜켜히 다가서는 차가운 기운을 피하려다 보니

새악시 붉은 볼이 털복숭이로 변했구려!~~ 

 

봄볕이 찾아와 얼음사슬을 녹여버리자

산여울은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더 낮은 곳으로 보시를 베풀러 서둘러 흘러 내리고

이를 지켜보던 이끼들도 흐뭇한 미소로 푸르름을 더하네요.

 

이제 대원사에 다달았네요.

 

전주 일원에서는 진묵대사의 기행에 대한 설화가

상당히 많이 전해지고 있었네요......

 

<대원사>에서

 

저 뒤로 모악산 정상의 통신중계탑이 보여요.

 

<대원사 대웅전5층 석탑>

 

대원사에서 800m 쯤 오르면 수왕사에 당도합니다.

 

40여년전 나의 청년시절 어느 눈덮힌 겨울날 오후,

나는 또 혼자서 훌쩍 모악산을 향해 오릅니다.

 

전주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와서

이 아래 구이저수지에서 내려,

대원사를 거쳐 수왕사에 접어들었을 때

마침 한 50대의 텁수룩한 선사가

시루를 올려 놓은 화덕에 장작불을 지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역시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두 분이

모악산 너머 금산사쪽에 있는 심원암에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한복 저고리와 치마를 입은데다

흰고무신을 신은 두 여인의 안위가 너무 걱정되어

내가 같이 가 주겠다고 하고,

예의 그 선사와 몇마디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선사는 이곳 수왕사에서 전통주를 빚고 있는 중이며

나에게도 한목음 맛을 보라며

자기가 빚은 누룩에다 솔잎을 곁들여 걸러낸 술을 권했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그때의 술이 막걸리인지, 약주인지, 아니면 증류주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무튼 그 선사의 인정만큼은 금메달감이었습니다.

 

아주머니 두 분과 함께 수왕사를 나와 모악산 정상에 서니

김제평야에서 불어 오는 바람이 장난이 아니었고

햇님은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 마음이 바빴습니다.

 

모악산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그 아주머니들이 이젠 익숙한 길이라고 하여

각기 헤어져 내려 왔지만

그분들의 행위가 너무 놀랍고 기상천외하여

40여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있네요.... ㅎ

 

수왕사 연대기를 보니

임진왜란정유재란이 한창일 때

진묵대사는 30대 중반이었네요....

 

수왕사에서 조금 오르니

등산로 한켠에서 막걸리를 파는 행상이 있기에

혹여 예의 그 수왕사의 전통주인가 하고

한 잔 시켰더니,

보통 시중의 막걸리네요.

 

 

무제봉에서 올려다 본 모악산 정상

 

모악산에서 바라 본 정읍쪽의 산군들

 

오늘 산행 들머리인 완주군 구이저수지 쪽 정경.

 

저수지 건너편으로는 경각산.

경각산에는 패러그라이딩 코스가 있어

그 아래 죽림온천과 잘 어울리는 명소로 떠올랐다 하네요.

 

20여년전엔 통신중계소 출입이 금지되어

모악산 정상을 밟아 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완전 개방이 되어 다행이네요.

 

금산사오리알터에 면한 금평저수지

김제군 금산면사무소 소재지인 원평,

그리고 내가 초딩 3학년 까지 살았던 봉남면 행촌리 쪽을 바라봅니다.

 

정말 감회가 새롭습니다.

 

금산사 오른쪽엔 금구면구성산황산이 솟아 있어요.

구성산증산교의 성지로 알려져 있구요.

제가 어렸을적에 가 본 구성산

너무 괴기하고 신비스러웠던 것 같았어요.

그리고 많은 문화재들이 파손된 채로 흩어져 있어서 안쓰러웠구요.

아마 지금은 말끔히 정리되어 있겠죠?

 

이제 전주쪽을 내려다 봅니다.

미세먼지가 없는 맑은 날씨였다면

저 멀리 진안운장산 까지도 조망권에 들어 올텐데

오늘은 날씨가 맑지 않아서 보이지 않아요.

 

금산사로 내려오는 능선은 지루하기 까지 하네요.

바위다운 바위는 달랑 이 바위군 하나로군요.

 

케이블카 정류장을 지나고,

모악정을 지나니, 심원암 입구가 나옵니다.

 

이 맑은 물은 흘러서 금평저수지를 지나

내 유년기의 고향을 적시며 흐를것입니다.

 

그곳을 추억속에서 떠올릴 때 마다

마음속으로 울려 퍼지는 노랫가락.....

 

" 파란 하늘 위로 흰구름이 흐르고

하얀 모래 위에 시냇물이 흐르네.

지난날 시냇가에 같이 놀던 친구들

냇물 처럼 구름 처럼 멀리 가고 없는데

그리워서 그리워서 불러보는 그 이름"

(김세환씨의 노래인데 노랫말이 맞는지 모르겠네요.... ㅎ)

 

그리곤 또 곧잘 올드 블랙죠도 흥얼거리죠...ㅎ

 

이제 머잖아 붉은빛을 발산하며

흐드러지게 피어날 명자꽃(산당화) 울타리 너머로

금산사의 부도전이 고즈넉히 봄볕을 쬐고 있어요.

 

큰개불알풀꽃(봄까치꽃: Bird's Eye)

 

이 꽃에 관한한 미국과 우리나라의 표현력에 많은 차이가 나네요.

 

이제 금산사 경내가 들여다 보이는 지점에 이르릅니다.

 

비록 내 고향이긴 하지만

태어나서 인증샷을 처음으로 남기는 것 같아요... ㅎ

 

예전에 모악산이라 하면

곧잘 계룡산과 함께

신흥종교의 본산인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지만

 

실제로는 미륵도량의 중심인 국보 제62호미륵전과 

보물을 8개나 간직하고 있는 대찰 금산사를 품고 있는

호남의 명산이랍니다.

 

<보제루>

 

지금은 목련꽃매화나무꽃 몇그루가 상춘객들을 맞이하지만

아마 다음주 부터는 흐드러진 벚꽃

문간에서 부터 함박 웃음을 터뜨리며

고운님들을 맞이할 것입니다.

 

미래불로 통하는 미륵불상을 모신 미륵전....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가?

내가 처음으로 이 금산사로 소풍을 왔던 때가.....

 

문득 내가 3학년 까지 다니던 그 학교의 현황이 궁금해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내가 다니던 그때, 1개반에 75명씩 2개반이어서

한 학년이 적어도 150명 가량 되었었는데

2014년에는 전교생이 고작 28명에 불과하니

1개 학년이 겨우 5명 정도인 초 미니 학교로 전락하고 말았네요.

 

아무튼 그때엔

금산사엔 부처님이 모셔진 아래에 큰 솥이 있는데

 

그 솥 밑바닥을 만지며 소원을 빌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고 모든 죄도 면죄가 되지만

죄를 짓고 오거나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그 솥을 만지는 순간, 그 솥에 살고 있는 용이

그 사람을 잡아 먹어 버린다는 전설이 있어

어른들은 물론 어린 우리들에게도

무시무시한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월초파일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옷을 깨끗히 차려 입고

그 솥을 만지러 금산사 미륵전 앞에 길게 장사진을 치고

차례를 기다렸답니다.

모두가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요.

 

금산사,,, ,그리고 미륵전 부처님과의 오랫만의 만남...

 

그것은 미륵상 아래의 솥단지를 만지는 일에 너무 신경이 곤두서서

그 다음 일은 무엇을 어떻게 했고, 무엇을 보았는지

거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저 가마솥의 용에게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솥단지 밑바닥에 손가락 끝이 닿을 듯 말 듯 했지만

등골이 오싹해서 밖으로 허겁지겁 뛰쳐 나왔던 그 순간만이

금산사와의 첫 만남에 대한 내 기억의 거의 전부랍니다.

 

*, 소중한 문화재를 기념사진 촬영도 하지 못하게 하면서

"기원정사 건립불사"라는 선전 문구를

이렇게 게시해도 되는 건지 ...

문화재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이런 행위는 지양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고색창연한 단청과 벽화들

 

복원되고 있는 오층석탑에서 내려다 본 미륵전

 

머위꽃

 

 

 

 

 

 

 

 

 

방등계단 사리탑

 

 

 

금산사 입구의 벚꽃은 아직 피지 않아 아쉬웠지만

그 대신 동백꽃매화꽃 몇 낱이

함박 웃음을 먹음고 다가와 그 아쉬움을 달래줍니다.

 

모악산에서 발원하여,

금산사 계곡과 금평저수지를 거쳐

금산면 소재지인 원평과, 금구면의 한 모서리를 경유하여

내가 유년기를 보내던 김제평야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며

금모래밭을 일구어 놓으며 유유히 흐르던 그 여유스런 냇물....

 

특히 여름이면 그 냇가에서 모래집도 짓고

물고기와 다슬기도 잡고, 멱도 감던 시절들,

 

그리고 또 그 아침이 언제였던가

서해로 흘러드는 동진강 얕은 물줄기를 따라

개울을 가득 메우고 올라 오는 은어떼들의 등줄기 비늘위에서

반사될 방향을 찾지 못하고 현란하게 부서져 내리던 그 아침의 햇살들....

 

그 장관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 일대가

김제(金堤:금 방죽)

금산(金山)

금구(金溝:금 개울)

모두가 금과 연관된 지명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내가 어렸을 적 이 냇가에서는

사금을 파는 광산이 두어 곳 있었는데,

그 광산이 폐광을 하고 나면

그 광산 터는 커다란 방죽이나 호수로 변해서

그 옆을 지나가려면 그 제방이 무너질까봐 두려움이 앞섰었습니다.

 

또한 금산사에서 금산면소재지 원평에 이르는 지역에는

동학이나 증산교와 연계된 신흥종교들이 상당히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 신흥종교로 인한 폐해도 많았겠지만

6.25사변 후의 암울한 사회를 버텨내는 정신적 지주로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할 부분도 많다고 느낍니다.

~~~~~~~~~~~~~~~~~~~~~~~~~~~~~~~~~~~

아침에 모악산 들머리로 향할 때

우리 버스는 전주시가지를 통과하게 되었어요.

 

오랫만에 고향 거리를 감회에 젖어 바라보고 있다가

시내 한 가운데 교차로에서 1시간여를 지체하는 사건이 일어났네요.

 

고향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하게 지내버린 나를 꾸짓는 듯하여

여기 정든님들과 고향 산하의 정령들에게

노제(路祭)인 듯 한 판 씻김 굿인 듯

고향 한 가운데 마음을 내려 놓고 고향의 민낯을 우럴어 봅니다.

 

잘 있어요.

나는 그대로 하여 지금 이 길위을 걸어 가고 있고

오직 그대로 인하여 하나의 궤적을 그리고 있나니

부디 그 궤적이 풍진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또렷한 금맥을 형성하기 바랄 뿐이랍니다...

 

안녕,

내 고향....

전주, 모악산, 금산사 ..

그 산하(山河)여!~~~~~~

 

 

 

출처 : 늘푸른수토일산악회
글쓴이 : 킬리만자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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