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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설국 -- 점봉산

 

2012년 1월26일 ... 햇살 밝은 날

소점봉산의 설경을 새겨 두었고,

2012년 10월 27일에 점봉산의 가을을 ,

그리고 2013년 7월 8일엔 점봉산의 여름을 담아 왔었네요.

언제 찾아 가도 나에게 실망을 주지 않는 점봉산(點鳳山),

 

오늘은 또 어떤 모습으로 날 반겨줄 것인가?

 

 

2015년 11월 29일 오전 7시30분 상일동을 출발하여

10시 조금 못미쳐 진동계곡 필례약수 부근의 큰원진개골로 진입합니다.

 

아직 11월인데도 계곡의 폭포 주위엔

얼음과 고드름이 겨울을 알려주고,

 

2~3일 전에 내린 눈은 아직도 녹지 않고

겨울 나그네들의 발걸음을 가뿐하게 이끌어 줍니다.

 

작은 돌징검다리를 좌우로 몇 차례 건느고 난 후에

능선으로 오릅니다.

 

 

 

안부에는 바람이 불지 않아

목화송이 같은 눈떨기들이 부드럽게 시야를 차지하지만

 

바람이 지나가는 통로에 있는 나뭇잎새에는

서릿발 처럼  싸늘한 상고대나 빙화, 또는 설화가

보는이의 마음 마저 으시시하게 만듭니다.

 

아직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넓은 마른잎새 위에선

커단 눈꽃 봉오리들이 다투어 피어나서

저를 맞고 또 배웅합니다.

 

이 겨울, 점봉산의 다정한 쥔장이여!

 

 

이제 크리스마스도 머지 않았는데,

그대의 단아한 모습에 내 가슴의 소리를 담아서

고운님들께 성결한 선물로 보내드리고 싶어요....

 

 

제가 보여 드리는 한 가락 한 가락의 춤사위에는

제 모든 날들의 희로애락이 모두 녹아 있어요.

 

제가 푸른 옷으로 성장을 하고 있을 때는

잘 보이지 않던 제 춤사위들이

이렇게 옷을 벗고 있으니,

적나나하고 또렷히 나타나네요.

 

이제 저희는 생존경쟁이라는 미명 아래 치장했던

영욕의 지난 세월을 참회하려 하오니

참회의 길을 알려 주소서......

 

저희는 지금껏 무엇이 옳고 그름인가를 아지 못한 채

이 시각 까지 흘러 왔으나

아직도 미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참된 길을 보여주소서.

 

저는 이제 제가 그리도 자랑스럽게 여기던

모든 색상들을 모두 버렸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측은해 보이셨나요?

님께서 이렇게 또 다른 순백의 의상을 입혀 주시니

당신의 은혜에 어찌 보답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망대암산을 향해 오르는 가파른 길...

고도가 높아질 수록 더 두터운 옷을 챙겨주시는 님의 진정에

정말 고마움을 느낍니다.

 

 

 

하늘 호수에 드리운 무성한 가지들은

바닷속 산호초들을 연상시킵니다.

 

이 숲의 어우러짐은 우리 인간사회의 한 단면 인양

현란한 상관관계를 보여주는군요.

 

 

 

이 세상 그 어느 것으로도 흉내낼 수 없는 순백의 공간....

우리 서로의 만남도 이렇게 해맑은 마음으로 맺어졌으면 !~~

 

제가 설경에 취해

늦게 도착한 휴식처에서

먼저 도착한 횐님들이 식사를 끝내고 떠나가고 있군요.

 

미안해요.

먼저 도착하신 횐님들!~

그러나 어쩌겠어요.

 

저로서는 불가항력인걸요.

이 점봉산이 자꾸만 제 발길을 붙잡아요.

자기 예쁜 모습 좀 담아 주고 가라구요.......  ㅎ

 

여름날 그 자랑스럽기만 하던 자태를

잠시 이 순백의 의상속에 감추고

다가 오는 새 봄날,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태어나기 위해

긴 기도와 참회의 시간속으로 빠져든 망대암산.......

 

망대암산의 암봉들!

 

지금이 여름날 이었다면

곱다란 덩굴조팝나무꽃들이 반겨 주었으련만....

 

그리고 왼편으론 가리봉

정면으로는 흘림골 너머로

서북능선대청봉도 고운 미소로 맞아 주었으련만!~~

 

봄, 그대를 기다리리라.

 

내 생이 비록 보이지 않는 포승줄에 얽매인 영어(囹圄)의 몸이거나

실락원의 나그네로 눈보라의 어둠속을 방황하는 몸이라 할지라도

 

나, 영원히 타오르는 마그마를 품은 행성이 되어

나의 봄을 기다리리라!~~

 

망대암산(望對岩山)을 우회하며

 

 

지금 비록 푸른 숲의 터널은 아닐지라도

다가 올 그날의 꽃향기를 가슴에 새기며

천국의 나그네가 되어

이 설원위를 지나 갑니다.

 

 

하얀 백설속에서

자신들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아무도 모르게 반짝이며

새로운 생명을 갈무리하는 이 숲의 숨소리는

차라리 푸른 의상으로 성장한

여름날 숲의 숨소리 보다 더 열기에 차 있습니다.

 

망대암산에서 점봉산 정상에 이르는 길은

비록 짧지만

시시각각 많은 꽃들이 아름다움을 뽐내는 경연장이기도 합니다.

 

수수꽃다리, 함박꽃, 매자나무꽃, 터리풀과, 종덩굴류.

박새꽃 무리와, 괴발딱취(단풍취), 샛노란 돌양지꽃무리들.....

 

나는 이 순백의 설원위에

그 갖가지 꽃들을 피워 올려 보며

흥에 겨워 이 길을 걷습니다....

 

설원은 차갑움 속에 열기를 감추고 있지만

제 가슴속 열망의 눈동자는 그대로

눈덮힌 가지와 숲사이를 지나

숲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퍼져 나갑니다.

 

 

눈은 세상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사랑의 묘약입니다.

 

내생의 끝...

분신들을 다독여 지심에 묻고 나면

몰려 오는 고독과 상심의 계절...

 

그 계절에 기댈 곳 없어 시름하는 내 육신을

이리도 따스히 안아주는 그대!~~

 

나는 아무말 하지 못하고

그저 그대의 품에 기댈 수 밖에 없어요!~~

 

사람들은 순백의 세계에 대해서 말하지 않아요.

그런 세상을 상상할 수도, 현실에서 찾아 볼 수 도 없기 때문이죠.

 

세상과 격리된 수도원의 수사라든가,

깊은 계곡의 사원에서 참선에 정진하는 처사라든가,

아니면 현실에 몰두하지만 물질적인 욕망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라면 몰라

 

우리 일반인들은

그런 세상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살기 때문이죠.

 

한마리의 봉황과 같은 눈덮힌 이 산의 능선길에는

오직 우리들의 발자욱만이 선연히 찍혀요.

 

그러다가 우리가 지나가면

새근 새근 내리는 세설(細雪)이 기다렸다는 듯히

또 그 흔적둘 위에 쌓이네요.

 

 

이 고립무원의 설원에

그 어떤 생명체들이 견뎌 낼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런 극한 상황속에서도

생명의 씨앗들은 더 치열한 생명력으로

다가 올 봄을 장식할 채비에 몰두 하고 있으니

 

오!  오묘하고 아름다워라,

생명의 신비여!~~~~

 

 

사랑하는 님이시여!~~

그대에게만 조용히 보내드리고 싶어요.

이 순백의 세상을!~~

 

이 순백의 설국이 그대에게 전해 지거든

생각해 주세요.

저를!

그대를 향한 제 순결한 마음을!~~

 

 

 

 

님이시여!~

당신의 이 극진한 세례(洗禮)로 인하여

저는 지난날의 모든 오욕으로 부터 자유로워졌나이다.

 

이제 당신의 이 세례의식을 마치면

저는 영육간에 완전히 새로워져서

당신 앞에 온전하고 오롯하게 설 수 있으리니!~~

 

 

사랑하는 이여!~

이 성스럽고 순결한 제 선물로 인하여

님께서도 성결한 영육의 울림으로 충만해지면 좋겠어요. 

 

 

이렇게 단순한 하얀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순간입니다.

 

정상에 가까워집니다.

더 하지도 않고 덜 하지도 않게

꾸준히 내리는 세설(細雪)로 인해서

 

오늘 큰님의 선물.... 점봉산

아름다운 자태를 조금도 흐트리지 않고

세심한 배려로 저희를 맞아 줍니다.

 

 

 

점봉산 정상에서

 

올라 왔던 길을 되돌아 봅니다.

계속 내리는 가는 눈 때문에

시야가 흐리고, 궤적이 지워지고 있습니다.

 

정상에서

 

하얀 설원의 정상에

소리가 들려요.

바람소리요.

먼 구원의 나라에서 돌아 온 바람소리 인가봐요.

 

큰님이 뿌려주시는 눈가루는

사랑의 은총인양 

약간 강하지만 결코 거부감을 주지 않는 부드러운 바람을 타고 와

얼굴위에 산뜻하게 입맞춤하며 부서져 내려요.

 

이제 곰배령을 향해 내려갑니다.

 

귀둔리곰배골이나

진동초교를 지나 강선리쪽으로 내려 갔거나 올라 왔던 기억이 있어요.

 

강선리 하면

뙤약볕 아래서 고추밭을 매던

안경쟁이 -아정-님이 건네준

곰취장아찌와 갖가지 약초를 발효시켜 만든 효소가 생각나요.

그 선녀는 지금 이 눈세상에서 무엇을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을까?

 

 

그리고 4~5년 전에 소점봉산을 오르다가

무릎을 넘는 적설 때문에

곰배령이 내려다 보이는 지점의 한 봉우리(1241봉)에서

올라 왔던 귀둔리로 다시 하산을 하고야 말았던 기억이 생생해요.

 

이제 나무들도

큰님께서 입혀주신 하얀 축복의 의상을 벗지 않고

조용히 시립한 채로 저희들의 행진을 축하해 주고 있어요.

 

 

한참 앞서 간 이들의 흔적을 놓치지 않으려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설경을 가슴속에 담습니다.

 

이제 언제 다시 찾아 올 기약도 없는

이 설국에서!~~~

그렇게 이 나그네는 선경을 하나 하나 새겨 두면서

이 길을 헤쳐 갑니다.

 

 

 

더 없이 황홀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론 더없이 아쉽고 안타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곰배령 내려가는 길에서

 

 

 

 

 

 

 

 

 

 

 

 

 

27명의 대원들

 

그러나 우리는

소점봉산을 오른편에 두고

곰배령으로 우회하는 길을 러쎌하면서 내려가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20~30Cm의 많은 눈이 쌓여 길이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랫 동안 비탐방지대로 남아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서

쓰러진 고사목들과 우거진 숲으로 인해 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30~40분 정도를 허비하면서

길을 찾고자 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어

왔던길로 점봉산을 넘어 들머리로 다시 내려 가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원점 회귀는 큰 용기가 필요한 결정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왔던 길을 따라 내려 오는

어둠속의 산행 내내 되뇌이고 있었습니다.

 

" 점봉산아!~~

정말 고마워,

그대가 나를 돌려 세워

다시 한 번 너의 품을 느끼게 만든 것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정말 이지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아.

그대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그대를 언제 다시 한 번이라도 더 만날 수 있겠어!~~

정말 고마웠어."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