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의 설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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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 눈이 내린다

시가지 거리엔 비와 진눈개비,

그러나 멀리 산성의 눈썹 언저리에선 하얀 눈이 나를 부른다

 

이런 날엔 내 안으로 부터

참을 수 없는 욕구가 분출되어

그와 함께 하나가 되어야 한다.

 

남아 있는 많은 날들을

요것 조것 따지며 참기만 하고 산다면

자연스런 나의 모습은 어디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인가?

 

 

 산성의 윗부분에는 하얀 눈이 소복을하고 있지만

아랫 부분에는 이렇게 노루발풀이 오롯히 기운을 모으고

정성스레 봄을 기르고 있다

 

 이제 계곡의 얼음도 자취를 감추려는 찰라

 

 아직 까지도 어미품을 떠나기 싫어하며 앙탈을 부리듯

센 머리칼을 한 사위질빵이 긴 덩굴에서 봄을 맞는다

 

 마천동 쪽에서 오르다가

일장천과 남한천을 지나 행정학교 뒷편 능선을 따라

수어장대 암문으로 오른다

 

 

 역시 산허리 쯤 오르자

잔가지 위에도 흰눈이 쌓여 눈이 부시다

 

 수어장대 암문 입구에서

 

 

 

 암문을 통과하여 성안에 들어섰다

 

 눈에 덮혀 가지가 휘어진 소나무 머리 뒤로

청계산과 관악산 사이에 붉은 서기가 어린다.

 

 

 

 아직도 시가지에는

가느다란 안개비가 내리고 있을까?

 

 암문에서 수어장대로 오르는 짧은 길가에

이제는 키가 훌쩍 자라버린 장송들이 늠름한 모습으로 나를 맞는다

 

 수어장대 입구에서

 

 수어장대 입구, 광장과 남한문의 모습

 

 수어장대 입구에서

유난스런 곱슬머리에 하얀눈을 이고 있는

멋진 나무의 하얀 미소가 싱그럽다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곱슬가지를 간직할 수 있을까?

정말 보기 드문 예술품 같다

 

 

 

 담장 너머에서 수어장대를 위해

끝없이 아름다운 자태로 춤사위를 보여주는 곱슬나무

 

 이 향나무 역시 멋드러진 자태로 춤사위에 끼어든다

 

 

 

 수어장대 담장 밖의 모습

 

 수어장대 출입문

그 오른편으로 청량당의 모습이 보인다

 

 수어장대 정문을 나서려하니

소복하고 시립한 나무 호위병이 잘가라 인사한다

 

 수어장대 출입문(바깥쪽에서 본 모습)

 

 

 

 

 

 

 

 강남과 강북을 가르는 한강줄기의 끝에 남산이 보이고

어제 까지만 해도 봄이 무르 익을 것 같던 산야가

온통 하얀 눈으로 덮히자

상심한 까치 한 마리가 눈 덮힌 가지 위에 앉아

침통한 파숫군이 되어 눈이 빨리 녹기를 기원하고 있다 

 

 소나무잎을 몽실몽실하게 하얗게 감싼 눈으로

소나무 가지들은 벼란간에 신부 부케로 변했다

 

 

 이제 서문에 다다랐다

 

 

 서문을 통과하여 다시 마천동쪽으로 내려 서자

 평소엔 침통하고 괴기가 서린 듯하던 성황당 돌무덤위에도

하얀 눈이 쌓여 정겨움으로 다가선다

 

 

 빙점에서 눈과 진눈개비가 내렸기에

나무에는 고드름 같은 얼음이 맺혔다...

 

 

 

 이틀 전...

남한산성 서문에서 이 길을 따라 마천동으로 내려 오던 중

이 통나무 의자에 앉아 있던 60대 중반 쯤의 남자가

땅 바닥으로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곁에서는 어쩔 줄 몰라하는 2명의 여자 등산객과

한명의 남자가 쓰러진 남자를 이리 저리 편안한 자세로 뉘이며

119도 불렀단다

그러나 그 남자는 엎어진채로 혼돈의 상태로 피를 흘리고 있다

 

그래서 나도 어떻게 해 볼 요량으로

다른 남자와 함께 바르게 뉘이고 나서

가슴을 누르고 심폐호흡을 시키려고 했지만

그는 이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내 팔안에서 운명을 달리한 한 사람...

 

오늘 이길을 다시 내려 오며

나는 그 의자 위에 놓인 이 하얀 국화꽃 한 다발을 보며

그의 명복을 빌어 준다.

 

그 가족들의 고인을 기리는 애톳한 마음들이

이 국화꽃 한 송이 송이 마다 깃들어 있는 것 같아

마냥 시려운 마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