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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숲속길의 명상

남한산성의 딱따구리

 

 

- 어느 누군들

신의 계시가 내리고 있는

이 숲의 적막을 깨뜨리고 싶겠어요.

저도 이러는

제가 싫어요 -

 

신의 은총 속에 숲은 고요한데

딱따구리 혼자

혼신으로 고목을 찍어 댄다.

 

고목의 진동이 부리로 전해 와

온 몸이 절절하다.

 

그러나

그의 목탁 소리는

청아하고

또 슬프다.

 

그의 목탁 소리 속에는

배고픔을 벗어 나려는

처절한 발버둥이 있고

그의 목탁 소리 속에서는

몇개인가

생명이 사라지는 단말마가 들린다.

 

내 가슴 속엔

두 개의 목탁이 같이 울리고 있다.

 

하나는 처연하도록 푸른 빛깔이고

또 하나는 땀 냄세에 범벅된 회색 빛깔이다.

 

두개의 목탁은 어우러져

현란한 화음을 내며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나는

그 화음의 카오스(chaos) 속에서

한 점의 미립자가 되어

카르마(karma)의 길을 재촉한다.

 

남한산성을 산책하다 보면

딱따구리가

벌레를 잡아 먹느라

고목을 쪼아 대는 소리가 

온 숲에 가득하다...

 

녀석에게는

소중한 아침 식사 시간인 것이다.

 

녀석의 뾰쪽한 부리는 단단하고

입질은 정확하다.

 

쪼아 대는 그 울림에

실신한 벌레들이 튕겨져 나오거나

껍질이 벗겨져 모습이 드러 날 때에는

가차 없이

식사 감이 되고 만다.

 

생명은 똑 같이 소중하지만

이처럼 약육강식의 질서는

대자연의 순환이란 측면에서 보면

엄연한 먹이 사슬의 아픈 숙명이다.

 

이것은 좀더 좁혀서 보면

인간 사회 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엄연한 질서이니

이 질서 속에서

약자들의 아픈 소리를 모아

보다 따뜻한 화음을 만들어 봄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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