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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서

20여년 만의 만남 ...

 

 

12월 3일 : 일요일

 

딸내미를 수원 효원 고등학교 고사장에 내려 주고

곧 바로 돌아 오는데

올 때는 갈 때와는 달리

길이 전혀 막히지 않았다.

확실히 오늘 경기도 일원의 중등교사 임용시험을

이곳 한곳에서 치루게 되니 아마도 2만명에 가까운 응시자들이

한꺼번에 몰린 탓이리라...

 

영하 8도의 혹한 속에서 시험들 치루느라고

무척들 힘들겠지 ..

모두들 합격의 기쁨을 맛보았으면 좋으련만 ~

 

++++++++++

 

대학 동창녀석의 딸 결혼식이 있었다.

녀석은 며칠전 전화를 하면서

변호사 사위를 얻었노라고 목소리가 들떠 있었던 게 생각난다.

 

그래 네가 좋으면 그만이지 ..

누구나 자기가 만족하면 그걸로 족한 것을 ~

 

멀리 전주에서 올라 온 동창녀석들을 만나 보는 것도 오랫만인데

그냥 모두들 뿔뿔히 흩어져 버린다.

아쉽다....

무엇이 그렇게 바쁘던가 ?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인데

왜 그렇게들 서두르는지...

아마 날씨가 추워서 일거야 !

 

그래도 뭔가 가슴에 서운함을 간직한 셋이서

근처의 횟집에 앉았다.

*재경 동창회*총무 녀석과 또 한 친구 그리고 나..(아쭈 무슨 노래 제목인가)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다...

내 맞은 편 주방에서 일하던 아줌마가 나의 바로 앞 식탁에 앉아서

손님이 한가하니 서로 다른 아줌마들과 담소를 하고 있었다.

 

처음엔 옆 모습만 보여서 잘 못 알아 보았는데

정면으로 얼굴을 돌리는 순간 눈에 익은 친척 누나의 얼굴이 오버랩되는 게 아닌가?

 

나는 그럴리가 없다 생각하고 그냥 무시하면서

계속 얘기하면서도 신경이 쓰여서 그 옆 모습을 더 찬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입술 모습 ..전체적인 골격..음성..

아무리 봐도 비슷해서

계산을 하고 나서 쥔 한테 그 분의 성함을 물어보니 잘 모른단다.

 

할 수 없이 내가 그 아주머니 앞으로 가서

* 저 혹시 성함이 ***씨 아니십니까*했더니

나를 돌아 보던 그 아주머니가 한참을 눈을 크게 뜨고 생각하더니

* 가만 있자 혹시 **이? *하면서

내 이름을 부르는게 아닌가 !

 

맞다 맞아....

20여년 전에 헤어졌던 친척 누나.

그 아래 동생이 나하고 동갑내기이며

그 동갑내기하고는 너무나 친한 사이다.

 

내가 중 고딩 때 형편상 그 누나 집에서 몇년간 기거한 적이 있었다.

그 궁핍했던 시절에 ~

 

전주시의 변두리 인후동이라는 동네..(그당시는 시골이었지만 지금은

아마 아파트 촌으로 변모해 있을 것이다.)

 

나는 나를 키워주신 고모님(조실부모하여 2살 때 부터 나를 맡아 키우셔서

나는 9살 무렵 까지 친 어머닌줄 알고 자랐다.)과 그집에

단칸방을 얻어 살았었다.

 

큰 누나는 시집을 갔었고 작은 누나는 그집에 같이 살면서

거의 대부분은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병원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그리고 내가 고 1이고 누나가 22살 겨울에

내변산의 어느 한적한 보건소에 근무하던 중

그 누나가 세상을 버린 것도 그 집에 살던 때이다..

 

그 꽃다운 나이에 ~

그 예쁘고 착했던 누나가 ~

세상의 파고를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시절의 가을에서 초봄 까지

나는 방과후면 집에다 가방을 내려 놓기가 무섭게

어머님이 머리에 이고 오실 나뭇단을 받으러

바람이 세찬 아중리 수리조합 저수지길을 따라 올라 갔다.

어깨에 짊어질 멜빵 끈을 준비해서...

삭풍을 뒤집어 쓴 하얀 갈대 얼굴을 하고

무거운 나뭇단에 눌려 자라목이 된 어머니...

젊었을 적엔 미인 소리를 들으셨다던 어머니...

지금은 흔적도 보이지 않으시는 어머니...

 

그 시절을 생각키우는 누나를

여기 천만명의 사람들 속에서 만나다니....

 꿈속에서 많이 그리워했던 얼굴들...

 

같이 살던 이 누나의 엄마를 나는 외숙모님이라고 불렀다.

일제 때 남양군도에 징용되어 끌려가서

폐병을 앓아 돌아가시기 까지

갖은 병 수발을 다 하시며 5남매를 길러낸 외숙모님 ~

그 외숙모님도 돌아가셨다니....

 

20년이라는 세월이 그렇게 길 줄이야 ~

 

그렇게들 보고 싶어서 TV 에 보고 싶은 사람 찾기에

신청해 보자고 한적도 있었다니 ~

 

이제 보고 싶은 사람 만나게 되었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은 큰 기쁨을 맛보리라 ~

 

 

 

 

 

 

 

 

1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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