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 연휴와 동창회 모임등이
폭포수 처럼 쏟아져 내려가 버렸다.
설날 아침...
모처럼의 시간을 함께하자며
기차 여행이 어떻겠냐는 아내의 제의에
딸애는 시큰둥한 반응이었고
나 역시 갑작스런 제안에 즉답을 할 처지가 못되어서
오늘은 그냥 남한산성에나 오르련다고 했는데,
마침 대학동창 Lim에게서 남한산성에 가자는 전화가 왔다
산행에는 거의 경험이 없는 그.......
그런 그였기에 산을 끝까지 오를 기세가 보이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내가 다그쳐서 수어장대 암문에 이른다
암문을 막 통과하니
그 곁의 야외용 탁자에
중년의 여인 2명이 앉아서 간식을 들고 있다
넉살 좋은 친구는 다리가 아파서 같이 좀 쉬어가자며
6명 정도는 앉을 수 있는 탁자의 한 곁에 자리를 부탁하니
그 여인들도 순순히 응해준다
뿐만 아니라 한참을 앉아 있다 보니 추위가 엄습했으나
그 여인들이 권하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니
추위가 물러가고 한결 몸이 따스해졌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들에게
흘러간 팝송과 컨추리 음악을 메들리로 엮어서 들려 주는
밤업소의 가수가 운영하는 음식점에 들려 간단히 점심을 대접하고
내일 청계산 산행을 동행하기로 약속한다
매바위에서 바라 본 청계산 중계탑
설날 다음날 아침,
우리와 함께하기로 한 모대학 강사가 불참한 관계로
Lim의 공기업체 동료였던 친구를 급히 투입한다
왜냐하면 그녀들이 친구 1명을 더 동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떻든 우리 6명은 약속시간 보다 약간 늦은 시간에
청계산 입구의 굴다리 앞에서 만나서 산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조금 오르다가 친구 Lim이
다리가 아프다며 뒤쳐지기 시작해서
앞서 간 그녀들의 자취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설날 연휴라 많은 인파들이 몰리고 있어서
그녀들을 만날 수 없으리란 것은 기정사실로 되어 버렸다
Lim은 여전히 술을 좋아해
1/3도 오르지 못한 지점의 벤취에 앉아서
오를 때에 가게에서 사가지고 온 막걸리를 꺼내놓고
예전의 그 직장동료와 대작을 하고
나는 정상을 다녀 오겠노라하고 두 사람을 남겨두고 산을 올랐다
청계산에는 설 전날 내린 눈이 아직도 녹지 않고 쌓여 있었다
오랫만에 올라 와 보는 청계산.....
4~5년 전이었던가
그 때에도 이렇게 눈이 쌓인 설날 이었다
정상에서 한동안 내려 오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기세등등하게 뛰어 내려오기에
그를 뒤돌아 보며 길을 비켜주었는데
조금 내려오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둘러 싸고 웅성거리기에 다가가서 보니
조금 전에 뛰어내려 갔던 남자가 발목을 붙잡고 신음하고 있지 않은가?
언뜻 보기에 50대 중반은 되었음직한 사람이었는데
옷차림은 따뜻하게 입었지만
등산화도 신지 않은 운동화 차림에
무엇 보다 산에 대한 상식이 전혀 없는 무모한 만용이
그의 발목을 부러뜨린 것이었다.
나는 119를 호출하였으나
이곳은 지리적으로 행정구역상 성남과 서울의 경계지역으로서
그 관할권을 놓고 서로가 책임을 전가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어렵게 구조대의 파견을 승인을 받긴했지만
이제는 이 사고 지점이 구조대가 요구하는 지점이 아니기 때문에
그 부상당한 사람을 자기들이 지적하는 장소로 옮겨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이 그 남자를 등에 업고
수 백 미터를 더 내려가서 구조대가 요구하는 장소에 그 남자를 내려 놓고
구조대가 오기를 기다렸으나 너무 늦어져서
나 먼저 내려 오다가 올라 오는 구조대원들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러기에 우린 언제나 산에서는 조심을 해야 한다
그 남자의 행동은 그 후로 나에게는 더 큰 교훈이 되었다
정상에 오르니 함께 오른 그녀들이 있었다
하산은 그녀들과 내가 동행했고
친구 Lim과 직장동료는 먼저 내려가서
음식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愛馬*라는 식당에서
입담 좋은 친구와 친구 동료,
그리고 그녀들 중에서도 대화에 능한 한 동행이 있어서
지루한 줄 모르는 구정 연휴가 되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의 설 연휴 이틀간의 짧은 산행!
살다 보면 이렇게 우연찮게 얼키고 설키는 경우도 있나 보다 ...
그러나 겨울날의 찬 공기 처럼
상큼하고 뒷맛이 깨끗한 청량제 같은 시간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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