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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강가

아름다운 친구 ..영원한 청년이여 ~

 

대학 입학 등록금 납입 마지막 날...

마감 시한은 오후 4시 30분.

전주 제일은행.

 

순창에서 농협에 근무하는

자기 친구에게

내 입학등록금을 구하러 간 친구겸

한살 위의 친척 형에게서 소식이 없다.

 

래듸오에서는 계속

정읍과 순창 복흥면 사이 갈재에 폭설이 쌓여

교통이 두절되었다는 뉴스를 내 보내고 있다.

내 속이 타는 줄도 모르고...

 

시간은 어연 4시를 지나고 있다.

그래도 소식이 없다.

 

내 친구 중에 영문과에 입학하는 녀석이

입학등록금을 납입하고 있다.

여유로운 모습이다.

 

4시 30분이 지났다.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은행을 원망스레 돌아 보며

발길 닿는데로 어딘가로 쓸쓸히 걷기만했다.

 

이제 나의 대학에 대한 열망은

이것으로 끝난 것이다.

 

 

나의 고딩 생활은 방황과 반항 그 자체였다.

문학과 경영과 원자력 방면과 정치외교에도

관심이 있어서 진로를 결정하는데도

수시로 변화가 따랐다.

 

3학년에 올라 오면서 이과를 선택했던 나는

공부를 게을리했다.

 

친척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을 마치신 어머님이

넓은 고무통 속에

밥이며 반찬 몇가지를 이고 오셔서

내려놓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더 열심히 하리라는 다짐 보다

가슴이 메어지는 아픔이 더 컸었다.

그건 어머님에 대한 죄악이었고

내 자신에 대한 배반이었다.

 

끝없는 방황은 나를 학문의 길에서

멀어지게 했다.

 

게다가 최종 입학 원서를 문과인

연세대 경영학과에 제출한 것이다.

 

이렇게 敵前 분열하듯한 나에게

합격의 영광이 따를리 만무했다.

그 당시만해도 연대에선

의예과와 경영과가 커트라인이 젤 높았는데...

내가 넘 만만히 보았던 탓도 있었으리라.

 

 

나는 서울 친척집에 잠시 머물기도 하고

지인의 알선으로 중학생을 가르치는

입주식 가정교사를 하기도 하면서

더 혹독한 계절을 보내게 되었다.

 

파월 장병들께 보낼 고추장 통조림을 제조하는

장유공장에선

양파를 갈아 놓은 걸 가마솥에 퍼다 붓느라고

눈물을 쉴 새 없이 흘렸고

 

외벽 타일을 붙이는 현장에선

16층 높이의 나무 부조물 위에서

생명을 담보로한 곡예사 같은 생활을 했다.

 

게다가 15원인가 20원 짜리

각기 우동 한 그릇으로는

정말 너무 너무 배가 고팠었다.

 

그러다 년말이 되자

재가를 하신 어머님한테서 연락이 왔다.

 

너무 고생이 되면 잠시 내려와서

전주에서 취직자리를 알아보라고...

 

그러나 어머님께 와 보니

한 시도 맘 편히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그 친척형의 입에서

대학 시험을 한 번 보라는 권유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입학 등록금과 4년간의 생활을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까 ?

 

 

 

나는 눈 딱 감고

어머님 곁에서 한 달을 버티며

시험 공부를 했다.

 

이번에는 외교관이 되고 싶어서

정외과를 신청했고

과에서 Top이었다.

 

나는 좋아서 춤을 출 것 같았지만

그것도 잠간...

 

과에서 톱을 했어도

출신 고등학교 성적이 10%이내여야

전체 등록금이 면제되고

그렇지 않으면 수업료만 면제된단다.

그러나 전주고등학교에서 10%내에 들기는

내 실력이 모자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당시 나의 형편으로는

일전 한푼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인데

어쩔 수 없이 포기하려고 맘먹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나선 것이다.

 

순창 농협에 근무하는

자기 친구한테 부탁했더니

그 친구가 쾌히 승낙했다고...

물론 나도 몇번 만난 적은 있었지만

나의 일에 이처럼 적극적인 도움을 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꺼지려던 불씨를 살릴 줄 알았는데

그것 조차 이렇게 천기의 끈질긴 방해로

산산히 깨어지나 싶은게

도저히 아무 것도 생각키우기 싫었다.

 

 

 

 나는 은행문이 닫히는 소리가

내 가슴을 영원히 멍들게 하리라는 걸

암시하는 듯한 걸 느끼며

철길을 한 없이 걸었다.

 

이젠 희망도 끝났다.

기다림도 없다.

 

나는 저녁 무렵이 되어

친구집으로 향했다.

그 당시만 해도 전화기 보급이 잘 돼 있지 않아서

본인을 직접 만나기 전에는

정확한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갈재의 교통 두절 상태는

여전히 계속되는 상태여서

친구가 돌아와 있을리는 만무하였고

그래서

그냥 허탈하게

별 바라는 것도 없이

그 집을 들어서는 순간 ...

 

마치 승리자 같은 목소리의 주인공

내 친구가 나를 맞아주는 게 아닌가...

 

 

그는 등록금 영수증을 건네주며

믿음직한 미소를 띄었다.

 

무릎 위 까지 덮히는 눈길을 더듬어

몇 십리를 악전고투하며 내려왔을 그...

 

그리고 은행 시간이 지나서

앞 정문이 닫히니

뒷문으로 들어 가서

내 등록금을 내 주었던 그...

 

은행 시간에 맞추지 못할까 하고

그는 또 얼마나 노심초사하며

애간장을 태웠을까?

 

그러나

그는 지금 없다.

 

나 보다 한 학년 위였던 그가

공군 제대 후 복학을 했었고

 

그 여름 교정의 버드나무 싱그럽던

작은 연못가 벤취에서

*나는 살고 싶다*라는 영화를 봤었노라고

 영화 얘기도 즐겁게 들려 주던 그가

 

바로 그 벤취에서 내가 다녀왔었노라고

얘기해 주었던

운암 옥정호에서

 

바로 그 다음 날

낚시 도중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 것이다.

 

아름다운 친구여

너는 항상 내 안에 살아 있는

영원한 청년이란다...

 

벌써 몇 십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도

아니 내가 이 세상을 떠날 그 때 까지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못하지.

 

너와 씨름하며 놀았던

그 무덤가에도

할미꽃 제비꽃도 피어날거야

 

봄의 아지랭이 따라 피어나는

네 그리움

 

오늘 따라

너를 내 맘속 깊히 안아 본다

내 친구야...

 

안녕~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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