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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강가

모슬포 해변의 추억 ~

 

제주엔 

돌과 바람과 여자들만 많은 줄 알았었다

그러나 거기엔 유채꽃이 더 많았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곧 쓰러질 듯한 가녀린 모습은

영낙없이 노란 갈대 처럼 보였다.

 

벌들은 지천인 꽃밭에서

계속 노래를 불렀지만

바람이 센 날은 고행길의 연속이었다.

 

멀리서는 눈덮힌 한라산이

해안의 작은 내 천막을 굽어 보고

애증의 눈빛을 보내 주었다.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은

멀리 밭뙈기 두어 개 건너 길로

아침 나절에 한 번 또 오후 샛때 쯤 한 번

지나치는 해녀들의 모습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해 지고 난 저녁과

캄캄한 새벽녁에 해안 경비를 위해

교대 근무하러 오가는

해안 경비대원의 발자욱 소리와

그들의 두런거림 뿐...

 

무섭도록 적막한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에 갇혀

그렇게

한 봄과 한 겨울이 교차하는 걸 지켜봤다.

 나를 삼킬 듯한 기세로 밀려 와

해안 벼랑에 부서지며

피라밋 처럼 곧추선 파도 앞에서

나는 대양의 힘을 얻었고

 

뼛속 까지 스미는 세찬 바람속에 웅크리고 앉아

자갈 밭의 지심을 매는 아낙네에게서

질긴 생명의 향수를 느꼈다.

 

수천 수만의 수억이(돌고래)를 앞세워

화신을 몰고 오는 아프로디테를 저으기 바라보며

나는 가슴으로 울려퍼지는 봄의 소리 왈츠를 들었다.

 

그것은 자연이 나에게 선사하는

최고 최선의 선물이었다.

 

 평화로운 아침의 썰물 때면

해안에는 어김없이 작은 호수들이 생긴다.

 

그 호수속에서 아침이 깨어나고

소라, 석화, 홍합 그리고 어느 때는

미쳐 달아나지 못한 문어도 담겨있다.

 

거의가 50을 넘겼을 나이인 해녀들이

하얀 함지박과 구럭을 하나씩 짊어지고

해변의 큰바위 아래로 모인다.

 

나는 그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나서

옷을 갈아 입을 즈음

잠간 자리를 뜬다.

 

바닷 바람이 차가워서

잠수복으로 갈아 입을 때는

이렇게 모닥불을 지펴놓고 불을 쪼이면서

갈아 입는다.

 

잠수복을 입은 모습은

바로 전사들의 모습 ..그것이다.

대적할 자 없는

바다의 戰士.....

 자맥질을 하다 해면위로 고개를 내민 해녀들이

휘파람을 분다.

날 선 휘파람에 밀려

켜켜히 쌓인 청동빛 세월의 비늘이

한꺼번에 날아가버린다.

 

懷恨과 希望이 얼룩진 휘파람...

행복으로 채워져야할 자리는

얼마나 채워졌을까?

 

나는 그녀들이 해안으로 나오면

그들에게 다가간다.

 

구럭속에 담긴 그들의 가뿐 숨결은

해삼, 멍게, 소라, 문어, 그리고

때로는 성게로 변해있다.

 

나는 야구공 같은 해삼을 사서 먹어 본다.

해녀들의 그을린 원색의 미소를

가슴속에 차곡 차곡 쌓으며

바다의 야성에  물들어 본다.

 

 이밤도 내 가슴으로

바다의 노래가 들린다...

 

멀리 모슬포의 어느 이름 모를 해변의

파도 소리

바람 소리

그리고 유채꽃들이 바람에 유린 당하는 소리

교대병들의 발자욱 소리

해녀들의 휘파람 소리...

 

그리고

봄의 花信을 보듬고 오는

아프로디테의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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