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가히 국화의 계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비워져 가는 들녘을 가득 채우며 등장한
맑고 깨끗한 꽃...
때로는 노란 옷을 입고
또 때로는 하얀 소복을 하고
시린 계절의 아픔을 잉태한 속죄양으로
단두대로 향하는 붉은 노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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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전주의 한옥마을이 인접한 은행나무 골목...
내가 몸 담고 있던 교수님댁
봄이면 후박나무꽃 ,목련꽃, 목단꽃, 철쭉꽃 그리고 난초꽃
유월이면 장미꽃 넝쿨과 작약꽃
또 가을이면 국화꽃이 정원을 수놓곤 했었다.
특히 가을 이맘 때면
교수님은 손수 국화 분재를 만들어
국화 전시회를 열곤 하셨었다.
수 십 개의 하얀 손가락을 펴서
가진 것을 다 놓아 주는 아름다운 모습...
나는 그 모습이 보고 싶어서
국화 전시회장을 찾아 보았다.
가평의 아침고요수목원과 강화도 그리고 고창에서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휴일 교통편이 좋지 않아서
가까운 Coex 전시장을 둘러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그러나 내 맘속에 있는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교수님의 숨결이 베인
그 섬섬옥수 보다 더 곱고 가느다란 긴 꽃술...
세상의 어느 빛나는 보석과도 바꿀 수 없는
그 순백의 정결함...
내 기억속의 그 국화꽃은 아무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찾는 그것이 꼭 샹그릴라 일 필요는 없다.
한 송이의 작은 꽃 하나가
그것에 필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다.
기억속의 소중한 것들은
꼭 아름다운 사랑, 우정 같은 것이 아니어도 좋다.
어쩜 하찮게 보이는
꽃 한 송이, 물고기 한 마리 일 수도 있고
아픔과 슬픔과 한 방울 눈물과 미소일 수도 있다.
오늘 나는
국화꽃밭에서
비록 내가 찾던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진한 국화찻잔속에
내 기억 저편에 음각된 그 국화의 모습과 미소를 새겨 넣으며
과거의 세월을 마시듯 천천히 음복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던가...
하여튼 현재의 나의 상황을 애정을 가지고 지켜나갈 것이며
내 주위의 모든 이들과 나에게 속한 것들을
아끼고 잃지 않으리라...
나는 관계(상황)속의 존재이며
관계(상황)는 곧 내 삶의 증거이니까...
이 꽃의 모습이 내 마음속에 새겨진 그 모습과 제일 가까운 꽃이다.
하지만 많은 차이가 있다.
전시회장을 다 둘러 보았어도
그 꽃의 그림자는 역시 기억속에서
그렇게 미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오가는 행인들과
나 처럼 카메라를 들고
일부러 구경나온 관람객들의 표정속에서
한 없이 싱그럽고 깨끗한 미소가 잔잔히 묻어난다.
이 국화꽃들의 群舞를 연출한 사람들의 마음은
얼마나 설레고 희열에 젖었을까?
고층 콘크리트 건물의 숲
그리고 자동차들의 매연속에서 시들어가는 거리를
하늘거리는 국화꽃들의 이 작은 몸짓과 미소가
단숨에 천국의 화음과 천국의 숲속길로 바꾸어 놓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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